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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밭고랑»에 예수 그리스도 → 예수의 생애 항이 있음.

“나는 온 세상에 드러내놓고 가르쳤다”라고 한 것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실 때가 왔을 때 가야파에게 하신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 주님에 대해 —드러내놓은一 공경을 보이기를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성탄 시기. 그대는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 “마리아와 요셉에게 마음을 모아 거룩한 기대와 함께, 저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구간에서는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한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저는 베들레헴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게 될까요! 그리고 저도 주님과 함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의 말이 진실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또 어리석은 과거의 반복. 그리고 후에 그대가 되돌아 왔지만 그대는 명랑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겸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후반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아직도 비참한 돼지먹이의 행복에 애착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교만한 그대는 스스로의 약함에 상처받고, 용서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겸손해지면 하느님 아버지의 기쁨에 찬 환영이 반기고, 집에 되돌아온것과 새출발을 축하하는 잔치가 기다리고 있을것이라는 사실을 그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객의 비유와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또 누군가는 일을 핑계로 삼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꾸며낸 이야기나 엉뚱한 변명으로 얼버무리려 합니다.

그들은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지겹고, 머리가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지루해하고 괴로워 합니다. 매순간마다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기쁨에 넘치고 행복하게 사는 편이 훨씬 편한데 말입니다.

“저에게는 저를 도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영적으로 병들고 마비된, 쓸모있을 수 있을 —그리고 쓸모 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영혼들에게 무관심한 채로 남아있지 않게 하옵소서.

세계…'세계는 우리의 것입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당신은 자기 자신의 여문 옥수수 사이를 걷는 농부의 전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는 지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한가지 법률을 즉각 받아들이는 방법을 이용하셨다는 것이 당신 머리에 떠오른 적이 있습니까?

그대가 다른 사람들과 우호적으로 살게 될 행동 방법을 사랑하고 존경하십시오. 의무에 대한 그대의 충직한 복종이, 다른 사람들이 성스러운 사랑의 열매인 그리스도인의 성실성을 발견하고 하느님을 찾아내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도 마십시오.

모든 이스라엘 주민은 등록해야 한다고 명령한 칙령이 아우구스토 황제로부터 반포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주님은 자신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법률에 경의를 표하고 법률을 꼼꼼하게 수행하는 기회를 사용하셨다는 것을 생각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올바른 사회생활에 필요한 규범을 사랑하고 존중하십시오.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그 태도를 본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실한 삶을 알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예수의 소년기와 청년기, 즉 신전에서 박사들과 의논하는 예수님과 요셉의 일터에서 일하는 예수님. 이 두 예수님이 모두 당신의 모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33년 생애 그 중 30년은 침묵과 세상 속에 숨은 삶, 순종과 일의 삶이었습니다.

그 큰 젊은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써보내 왔습니다. “저의 이 상은 너무 커서 바다만이 그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감실(籠室)은 어떻고; 그 나자랫의 ‘평범한’ 작업장은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곳은 일상 사물들의 위대함 가운데입니다!

종교를 일련의 부정적인 주장으로 줄이거나, 또는 설익은 가톨릭 신앙에 만족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자기 얼굴을 벽에다 대고 주님을 뵈옵기를 원하거나, 또는 주님을 자기네들의 영혼한 구석에 처박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우리들은 우리들의 말과 우리들의 행위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그들의 마음을 포함해서 모든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성급하게 또 지나칠 정도로 직업상 높은 자리에 오르는데 마음을 빼앗긴다면 '사람들을 섬긴다'는 구실과는 달리 자기애를 감추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호기를, 어떤 유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우리 행동을 정당화하기를 추구할 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시선을 돌리십시오; 주님은 “길”이십니다. 주님께서 감춰져 계셨던 여러 해 동안에, 주님의 공생활을 앞당기는 데 “대단히 유리한” 기회들이 역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주님께서 열두 살 되셨을 때 율법 박사들이 주님의 질문들과 주님께서 하신 대답에 놀랐을 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셨고, 그리고 주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종하셨습니다.

온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하려는 그대의 그 거룩한 야망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유리한 시기나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면(그것들은 탈주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르니까) 다음과 같이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즉, 주님이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당신이 해야할 일은 순종하는 것, 별로 볼품없는 그 눈에 띄지 않는 일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 자신의 시간과 길을 갖고 계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잃어버린 아드님을 찾으시느라고 사흘 밤 사흘 낮을 소비하셨습니다. 당신과 나 역시 예수님을 찾으려는 우리들의 자발적인 마음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일들은, 그것들을 거룩한 방법으로 보고 매일 행한다면, 단순한 “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일은 인간적이고, 그리고 성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