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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길»에 믿음(신덕) → 살아있는 희망과 활동적인 희망 항이 있음.

믿음, 기쁨, 낙천주의. 그러나 현실 앞에 눈을 감아버리는 바보짓은 안됩니다.

“신부님,” *센뜨랄 모범생인 그 덩치 큰 젊은이가 말했습니다.(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신부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들고 턱을 내밀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면서 걷는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 ‘자부심’을 키워가라고 나는 자신있게 충고했습니다.

* 센뜨랄: '길'을 쓸 당시 마드리드대학을 센뜨랄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세속적인 일에 얼마나 열정을 쏟는지! 명예를 꿈꾸고, 재물을 탐내고, 육체적 쾌락을 좋아합니다!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노인과 중년층과 청년과 심지어 아이들까지! 모두 똑같이!

그대와 내가 그런 열정을 영혼의 일에 쏟는다면, 우리는 열열하고 실천적인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도직에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고 깊은 믿음. 베드로의 믿음과 같은. 그대가 이 믿음을 지닐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대는 사도직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적 한계를 넘는 장애물, 즉 산이라도 번쩍 들어 옮기게 될 것입니다.

마치 터널 속을 통과하듯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라는 태양의 광채와 안전함과 온기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대는 커다란 믿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대에게 그런 믿음을 심어주신 분이 방법도 주실 것입니다.

믿음.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 말을 자주 입에 올리면서 정작 실천은 하지 않아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강론을 위한 것이지, 실천하기 위한 덕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기적쟁이’가 아닙니다. 나의 믿음을 굳세게 하는 기적들은 복음서에서 기록된 것만으로도 나의 분에 넘칩니다. 

그러나 신심있는 그리스도인들, 그중에서 ‘사도적’이기까지 한 많은 사람이 비범한 영성의 길이나 초자연적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비웃을 때, 나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기적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우리도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Si habueritis fidem, sicut granum sinapis!”

거룩한 스승의 이 외침 속에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약속들이 들어있는지!

하느님은 언제나 똑같은 분이십니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서에서 읽은 놀라운 일들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주 하느님의 손, 그분의 능력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Ecce non est abbreviata manus Domini!”

그들은 믿음이 없는 대신 미신을 믿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의미없는 말을 듣거나, 거울이 깨지는 것을 보면서 나쁜 징조로 받아들여 마음의 평정을 잃는 어떤 권세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우습기도 했지만 부끄러웠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안되는 일이 없다 Omnia possibilia sunt credenti”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사도들과 더불어 그대는 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저의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Adauge nobis fid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