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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믿음(신덕) → 살아있는 희망과 활동적인 희망 항이 있음.

그대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어려서부터 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행복을 얻었으면서도 정작 생명이나 가족이나 꿈 등 자신이 가진 것 중 최고의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데 주저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그대는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 마음에서 터져나오는 감사의 뜻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눈먼 사람이 갑자기 시력을 회복하면 놀라지만, 평소 시력에 문제가 없던 사람들은 앞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사하고 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날마다 그대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그대가 ‘감사하고 있습니다’ 라는 등의 말을 저에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혹자는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무분별, 무모하다고 칭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남을 신뢰하는 것이 더 미친 것 같아보입니다.

용기를 내어 공공연히,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의 거룩한 신앙과 일치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다른 한 신앙인이 저에게 이렇게 써보내 왔습니다: “그대가 자기 힘으로만 해야 하게 되었을 때 그대는 당신 형제들의 도움을 똑똑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제가 모든 일을 ‘오직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머리에 떠오를 때,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와 멀리 있으나 함께하는 그러한 동반자’ 곧 성인들의 거룩한 통공이 아니라면 저는 제 마음을 채워 주는 이 낙천적인 마음을 보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신앙을 가졌지만 충분히 활동하지 않습니다. 신앙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도직에서의 필수요건은 신앙이고 신앙은, 비록 열매가 늦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지속성에서 자주 보여집니다.

만약에 우리가 인내하고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계속해서 해나간다면,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의 혁명의 표시가 당신 주위에 나타날 것입니다. 약간은 부르심에 따라갈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내적생활에 진지하게 임할 것이고, —가장 약한— 그밖의 사람들은 최소한 미리 경고를 받을 것입니다.

땅을 파헤쳐 밭고랑을 내는 보습(밭가는 쟁기)은 씨도 못보고 수확도 못봅니다.

신앙은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조만간 오히려 교회와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게 됩니다.

“등불을 켜서 그것을 뒷박 밑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습니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칩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어, 그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지상에서의 주님의 마지막 시간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가르쳐라.” 주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의 행위와 말에서, 그리고 그대의 행위와 말에서도 주님의 빛을 비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진정으로 신앙으로 살아간다면 전대미문의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속죄의 효과가 올라갈지 어떨지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달려 있는 것입니다.이 점을 확실히 묵상하십시오.

‘공론가(空論家)’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큰 이상을 하루하루의 영웅적이고 열매 있는 현실로 바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