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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길»에 믿음(신덕) → 본질과 필요성 항이 있음.

“주님,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Domine! Si vis, potes me mundare” 

하느님과 나와 그대가 알고 있는 일이 일어날 때, 그 불쌍한 문둥병자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그대가 종종 말씀드릴 수 있는 참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주님의 대답을 들으려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해 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Volo, mundare!”

성당의 담과 종각을 보고도 마음으로나마 감실을 찾아가 조배를 드리지 못할 만큼 눈이 멀고 덜렁거려선 안됩니다. 그분께서 그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모욕을 당하신 곳이라고 알고 있는 장소를 지나가면서도 원죄 없으신 마리아님께 화살기도 한번 바치지 못할 만큼 눈이 멀고 무분별해서도 안됩니다.

비관론자가 되지 마십시오. 일어났거나, 혹 일어날 수도 있는 모든 일은 결국 선하게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까? 

그대의 낙관주의는 믿음의 필연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그대는 하찮은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들은 경탄할만한 조직과, 출판과 언론사업을 세웠고, 또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방법을 갖추었는데 그대는 아무것도 없다고요? 자, 그렇다면 이냐시오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알칼라 Alcala의 박사들 중에서는 무식한 축이었습니다. 파리의 학생들 중에서는 가난하고 쪼들리는 편이었습니다. 그는 박해를 당했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길입니다. 사랑하고,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고통 당하는 것! 그대의 사랑과 그대의 믿음과 그대의 십자가야말로 마음에 품고 있는 사도직을 위한 불타는 열망을 지속시키고 또 사도직을 효과있게 해주는 확실한 방법들입니다.

어떤 연로하신 주교님이 직접 서품을 준 새 사제들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당부했습니다. “나를 봐서라도 예수님을 잘 대접하십시오. 예수님을 잘 대접하시오” 

주님,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귀와 마음에 그 말을 외칠 수 있는 권위와 목소리를 제가 가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탄은 얼마나 지독한 논리로 우리 가톨릭 믿음을 논박합니까! 그러나 논쟁에 말려들지 말고 놈에게 이렇게 말합시다. “나는 성교회의 자녀다”

사도적인 영혼을 지닌 그대여. 성 바울로는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Justus ex fide vivit” 

그대는 왜 그 불꽃이 희미해지게 내버려두는 것입니까?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Si habueritis fidem, sicut granum sinapis!”

거룩한 스승의 이 외침 속에는 얼마나 어마어마한 약속들이 들어있는지!

하느님은 언제나 똑같은 분이십니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믿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서에서 읽은 놀라운 일들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주 하느님의 손, 그분의 능력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Ecce non est abbreviata manus Domini!”

그들은 믿음이 없는 대신 미신을 믿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의미없는 말을 듣거나, 거울이 깨지는 것을 보면서 나쁜 징조로 받아들여 마음의 평정을 잃는 어떤 권세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우리는 우습기도 했지만 부끄러웠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안되는 일이 없다 Omnia possibilia sunt credenti”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사도들과 더불어 그대는 왜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저의 믿음을 더해주십시오! Adauge nobis fidem!”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행위들은 하느님의 삶을 사는 영혼들의 열기가 전해지는 밸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