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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길»에 고난 → 걸림돌 항이 있음.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정력과 시간을, 길에서 짖어대는 개들에게 돌을 던지느라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무시해버리십시오.

그대가, 세속적인 사랑을 위해서 그렇게 엄청난 타락을 감수했던 그대가 주님을 위해 그 정도 모욕을 참지 못한다면, 과연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좋아요, 그래 어떻다는 겁니까? 맨처음 그대를 끌어당긴 하느님의 불은, 그대에게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빛과 열기를 주는 것 외에, 가끔 도구가 나약해서 연기도 뿜어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속으로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할만큼 교만하지 않다면 그 이유만으로 그대가 영혼을 위한 사도직을 그만둔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어느 곳을 지나가시건 무관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신을 사랑했거나, 아니면 증오했습니다. 

어떤 사도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며 당신을 따를 때, 혐오나 호감의 중얼거림이 있다고 해서 과연 저를 놀라게 할 수 있을까요? 그가 또 한분의 그리스도이기에!

다시 한번 그들은 말했고 글을 썼습니다. 찬성, 혹 반대. 좋은 의도로, 그리고 나쁜 의도로. 알랑거림과 중상모략, 칭찬과 박수갈채, 성공과 실패…. 

바보, 정말 바보! 그대가 목적지를 향해, 머리와 가슴을 하느님께 향하여 똑바로 가고 있다면, 휘이잉 하는 요란한 바람소리나 귀뚤귀뚤하는 귀뚜라미 소리, 혹은 음~메 하는 소리, 혹은 꿀꿀거리는 소리, 혹은 힝힝거리는 소리들을 왜 걱정하는 것입니까?

그 소리들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벌판에 문을 설치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혀들이 재잘재잘 지껄이기 시작했고, 그대의 체면은 구겨졌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어서 더욱 어렵습니다. 

그대의 초자연적인 반응은 용서해야 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용서를 청하기도 해야합니다! 그 경험을 이용해서 그대는 피조물로부터 초연해져야 합니다.

그대는 자신이 베푼 호의에 대해 감사의 말을 듣지 못해 마음 아파합니다. 이 두가지 질문에 답해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그처럼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감사의 말을 듣고자 그 호의를 베풀었던 것입니까?

그대가 왜 놀라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적들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았습니다. 

라자로가 살아났을 때, 그들은 항복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생명을 준 그 사람을 죽여버리자!”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과거와 마찬가지입니다.

투쟁과 고난의 순간에, 어떤 때는 ‘선하다는’ 자들이 그대의 길을 장애물로 채울 때, 그대의 사도적 정신을 드높이십시오. 겨자씨 한알과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는 예수께 귀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제게 그 비유를 설명해주십시오 Edissere nobis parabolam” 

그러면 그대는 다가올 승리를 생각해보는 즐거움에 잠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사도직이라는 은신처 아래 깃들이게 될 새들과 부풀어오를 밀가루 반죽을 말입니다.

이 세상의 고난은 복되도다! 가난, 눈물, 증오, 불의, 수치…. 그대는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을 겪어낼 수 있습니다.

사도직을 수행할 때, 외부 적들의 힘이 아무리 대단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막강한 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대의 ‘자녀다운’ 정신과 ‘형제적’ 정신의 결여.

하느님과 사도직 형제들과 일치하는 한, 강력한 적으로부터 그대가 경멸을 당한다 해도, 그대가 웃음으로 넘겨버린다는 것을 나는 잘 이해합니다. 

그대에게 그게 어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