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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밭고랑»에 하느님의 자녀됨 →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기쁨 항이 있음.

기쁨 속에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저는 기꺼이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이 기쁨은 저의 믿음,희망,사랑의 결과이며,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입니다. 사도인 성 바오로가 보증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저를 바싹 따라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과 함께 아주 자신있게 걸어가겠습니다. 주님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해서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주님의 도움으로 저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 지극히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거듭 강조한 바 있는 한가지 충고: 명랑하십시오, 언제나 명랑하십시오. 이 충고는 자신들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생각하지 않는 저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대들은모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마적인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은 ‘찡그린 얼굴’을 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극악무도한 계략을 지칠 줄도 모르고 사용합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 중에도 ‘슬픈 표정’으로 덕을 실천하여, 그러한 소문을 퍼트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대는 이런 우승꽝스러운 거짓말을 우리들의 명랑하고 행복한 삶으로 지워버리길 원하셨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 점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그대가 희생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주위에 퍼뜨릴 때, 그대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고통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평화와 기쁨의 씨앗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인 남녀는 주위에 넘쳐나는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침착한 기쁨, 전해지기 쉬운 기쁨,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다시 말해 매우 초자연적이고 전파되기 쉬워 극히 자연적인 기쁨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길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만족하십니까?”라고 질문받은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이 마음과 의지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탄 시기. 그대는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 “마리아와 요셉에게 마음을 모아 거룩한 기대와 함께, 저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구간에서는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한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저는 베들레헴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게 될까요! 그리고 저도 주님과 함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의 말이 진실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객의 비유와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또 누군가는 일을 핑계로 삼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꾸며낸 이야기나 엉뚱한 변명으로 얼버무리려 합니다.

그들은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지겹고, 머리가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지루해하고 괴로워 합니다. 매순간마다 하느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기쁨에 넘치고 행복하게 사는 편이 훨씬 편한데 말입니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매일 매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번에 “조금씩” 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날은 약간의 기막힌 내용을 알아내고, 또 다른 날에는 제가 전에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발견합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이렇게 안심시켜 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의 행복은 나날이 더 커져갈 것으로, 그것은 네가 저 성스러운 모험 속으로, 네가 개입하게 된 저 대단한 복잡성 속으로 더욱더 깊이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하루 종일 불쾌한 마음으로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걱정거리입니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유일한 도피처인 잠마저 오래가지 않을거라며 잠들기 전부터 걱정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데 짜증이 나고 실망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남겨진 것은 영원한 행복으로 가기 전의 첫걸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임을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기쁨을 누리며 걸음을 계속하는 자만이 그 행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을 그렇게 비극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실 그렇지 않으니. 사랑을 물리친 자식만이 부모와의 만남을 반기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