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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하느님의 친구들»에 예수 그리스도 →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그분께로 가는 길이신 성모님 항이 있음.

성모님의 축일들은 모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축일들은 우리가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도록 교회가 기회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 축일’을 고를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의 중심 신비들을 몇 가지 성찰하게 됩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성삼위의 업적인 말씀의 육화에 관하여 묵상합니다. 마리아의 흠없는 모태에서 우리 주님께서 육화하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딸 마리아는 또한 성령의 정배요 성자의 어머니도 되십니다.

창조주께서 마리아에게 계시하신 계획에 복되신 동정녀께서 자유롭게 ‘예’ 하고 응답하심으로써, 거룩하신 말씀께서 인간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분의 이성적 영혼과 육체는 마리아의 지극히 순결하신 모태 안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위격,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하였습니다. 그분은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 성부의 영원하신 독생성자요 마리아의 참 아드님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께서, 신성과 인성의 어떠한 혼동도 없이 우리 인간 본성을 스스로 영원히 결합시키신 복되신 성삼위의 제2위격, 곧 육화하신 말씀의 어머니이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복되신 동정녀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그분의 최고의 품위를, 곧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크고 분명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라는 것은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에페소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이 진실로 하느님이며, 이 때문에 거룩한 동정녀가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고백하지 않는 사람은 파문될 것이다. 거룩한 동정녀는, 하느님에게서 나시고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육에 따라 낳으셨기 때문이다”(에페소 공의회, 제1조: DS 252/113).

역사는 우리에게 기쁨의 목격담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믿었던 것을 재확인해 준, 분명하고 명확한 정의를 얻었을 때 기쁨으로 가득 찼던 것입니다. 치릴로 성인의 말을 들어봅시다. “에페소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모두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결정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 신성모독자들이 물러났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우리는 한 목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시노드에 환호하였습니다. 신앙의 적들이 몰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당을 떠나면서 우리는 횃불을 들고 집까지 갔습니다. 때는 밤이었고, 온 도시는 기쁨과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1600년이 지났지만, 저에게는 당시의 충만한 경건함이 마음 깊이 느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똑같은 신앙이 우리 마음 안에 불타오르고 감사의 찬양이 우리 입술에서 터져 나오도록 허락하십니다. 복되신 성삼위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간인 마리아를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간택하실 때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성모 마리아의 망토 아래 피신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이제 다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신비에 관하여 성찰하며, 조용히 기도하고 마음 깊숙이 받아들입시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동정녀께서는, 온 세상이 담을 수 없었던 하느님을 태중에 감싸 안으시고 인간의 육신을 얻게 하셨나이다”(성모 미사의 복음 환호송).

오늘 전례의 기도문을 살펴보십시오.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의 모태는 복되나이다”(복되신 동정 마리아 공통 미사의 영성체송). 이 환호는 오래된 것인 동시에 새로운 것이며, 인간적인 것인 동시에 신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주님께서 곁에 계신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세상에 오게 하신 어머니는 복되시나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장애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첫 결심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을까요? 이때 우리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녀의 모범에서 영감을 얻도록 합시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넓게 열린 길을, 반드시 예수님을 통과하는 길을 보여 주십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면 올바른 길, 곧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주님의 수난에 관한 책들을 읽도록 늘 권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경건함이 가득한 그런 작품들에서 우리 마음은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같은 인간이시며 또한 참 하느님이신 분, 육신을 취하시어 사랑을 보여 주시고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고통을 겪으신 분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깊이 뿌리 내린 신심들 가운데 하나인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치십시오. 교회는 묵주기도의 신비를 묵상하도록 권장합니다. 성모님의 기쁨과 슬픔과 영광과 더불어, 우리 주님 생애의 놀라운 본보기, 곧 30년 동안의 조용한 삶, 3년 공생활 동안의 가르침, 치욕적인 수난과 영광스러운 부활을 우리 마음과 뇌리 속에 깊이 새겨 두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분께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 첫 열두 제자처럼 그분과 함께 살아야 하고, 그분과 동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총의 길에 장애물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13,14 참조). 그러면 마치 거울처럼 우리의 행동에서 우리 주님이 반사되어 보일 것입니다. 만일 거울이 정상이라면, 우리 구세주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분을 공경하며 따를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