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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하느님의 친구들»에 예수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의 일치 항이 있음.

“만일 존경받는 중요한 인물이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행동이 개선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아니 계신 데 없이 늘 함께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랑을 드리는 사람의 말과 행동과 감정은 점점 더 성화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 양심이 생생히 깨닫고, 또 우리가 하는 일은 어느 것 하나 제외됨 없이 모두 그분의 눈앞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수행할까요! 이것이야말로 제가 지난 수 년 동안 선포해 왔던 거룩함의 비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본받으라고 우리 모두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세상 한가운데서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 그리스도를 모든 활동의 중심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자기 자신의 직업이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또 세상의 성화를 위하여 세상 안에서 고귀한 일에 성실하게 투신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또 자신의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이 부족하다면, 그 사람은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의 초자연적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의 성화를 위한 하느님의 일꾼이 반드시 지녀야 할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초자연적 덕입니다. 이 덕으로써 우리의 지성은 계시 진리들에 대하여 동의하고, 복되신 성삼위의 구원 계획에 관한 충만한 지식을 전해 주신 그리스도께 ‘예’ 하고 응답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히브 1,1-3).

믿음은 단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에는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아마도 때로는 우리에게 힘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한 번 더 복음으로 돌아가서) 더러운 영이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한 것처럼 합시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치유를 간절히 바랐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아들을 고쳐 주시기를 희망하였지만, 그러한 행복이 가능하다는 믿음까지는 지니지 못하였습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시고 동시에 인간 영혼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를 도우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여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할까 봐 걱정합니다. 그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러한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눈물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의 열매이고, 참회의 열매이며, 참된 겸손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이번 성찰을 마치면서 우리도 주님께 똑같은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주님을 믿으며 자랐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살아오는 동안 거듭거듭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주님께서 자녀들의 마음에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가 더 많이 더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 어머니이신 분, 그리고 믿음의 스승이신 성모님께도 같은 간청을 드립시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또 하나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에서조차 서로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닮으라는 초대를 우리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신이 존경하는 분, 자신이 선택한 이상형과 조금씩 조금씩 같아지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행동 방식은 우리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정해집니다. 우리의 스승은 거룩하신 성삼위의 제2위격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 곧 사랑의 친교에 참여할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때때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따라갈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분의 지상 생애 동안 그분을 알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게 몇 마디를 건네 보십시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우리에게 낳아 주신 성모님께, 그다음에 사도들에게 말씀을 드리십시오.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렸다”(요한 12,20-22). 여러분은 이 장면에서 용기를 얻지 못하십니까? 그 이방인들은 감히 주님께 직접 다가가지 못하였지만, 좋은 중재자를 찾았던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지상 생애의 대부분을 보내셨던 시기, 성모님 곁에서 지내셨던 그 시기에 관하여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로서 성모님과 입을 맞추고 함께 노시며, 성모님의 돌봄을 받으시는 모습을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성모님과 지상 양부이신 요셉 성인의 사랑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자라는 모습을 보기 좋아합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참으로 세심한 배려로써 예수님을 대하시고 어린 시절 내내 돌보시며, 그분에게서 많은 것을 조용히 배우셨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분들의 영혼은 점점 더 인간이요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영혼을 닮아갔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성모님, 그다음에 요셉 성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성심을 더 잘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두 분은 구세주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최선의 길, 유일한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리아의 영혼이 여러분 각자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우리 주님을 찬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의 정신이 여러분 각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이 교부의 이어지는 말씀이 처음에는 과감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인 생활에 분명히 영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육으로는 그리스도에게 어머니 한 분이 계실 뿐이지만, 믿음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의 열매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성모님과 동화되고 그분의 성덕을 본받는다면, 우리도 은총에 힘입어 많은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낳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영혼들도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와 동화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모님을 본받는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분의 영적 모성에도 참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성모님에게서처럼 침묵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거의 아무런 말도 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되고 진실한 삶을 보여 줌으로써, 그리고 우리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내밀한 유대의 표현으로 새롭게 성모님의 ‘피아트’(루카 1,38 참조: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를 끊임없이 기꺼이 되풀이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관상의 길에 있다는 이유로 온갖 산란한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맙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으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를 만나 알게 되고 그분 사랑의 달콤함을 즐긴다고 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경험하였겠지만, 저도 이 진리를 상기시켜 주고 싶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원수인 사탄은 포기하지도 않고 쉬지도 않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느님과 열렬한 사랑에 빠졌을 때조차도, 사탄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때 영혼이 타락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악마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마는 또한, 만일 아주 사소한 일에서라도 영혼이 주님을 거스르게 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양심에 절망을 안기는 결정적 유혹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느님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한 가엾은 사제의 경험에서 배우고 싶다면, 이런 말을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육신이 자신의 잃은 권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하거나, 더욱이 교만이 고개를 세우고 반항할 때에, 여러분은 서둘러 십자가 위에서 못에 박히고 창에 찔린 그리스도의 몸에 난 거룩한 상처들로 피신하여야 합니다. 영이 움직이는 대로, 그분의 거룩한 상처 안에 여러분의 모든 인간적 신적 사랑을 내려놓으십시오. 주님과 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그분의 피를 나누고, 우리를 예수님께 데려가신 성모님을 같은 어머니로 모시는 자녀임을 느낀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