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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하느님의 친구들»에 기도 → 예수그리스도의 본보기 항이 있음.

우리의 모범이시며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찬히 바라봅시다. 주님 생애의 중요한 순간들에 적어도 외형적으로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거룩한 복음서는 그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로 가시어 40일을 밤낮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마태 4,2 참조).

제가 고집을 부리는 것 같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버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보여 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의 모든 행동, 비록 가장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조차도 초자연적 차원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성을 생생하게 인식하면서 인생의 모든 순간을 사는 법을 배울 것이고, 하느님과 내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의 필요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알게 되고, 주님께 기도하게 되며,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의 행위를 하며, 주님께 귀를 기울이고, 아주 간단히 말해서,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우리 주님의 행동 방식을 성찰하면서 도달한 결론은, 사도직은 그 무엇이건 간에 내적 생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처음에 열두 제자를 선정하시는 방법을 보여 주는 성경 구절들은 저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동시에 아주 초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루카 성인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뽑으시기 전에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고 합니다. 베타니아에서 있었던 일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친구 라자로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시고 그를 죽은 이들 가운데 일으키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요한 11,41).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면, 만일 우리가 참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참된 생명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격려해 주고 싶다면, 무슨 일이든 기도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살펴볼 수는 없지만,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께 이야기하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직전의 긴박했던 시간만큼은 함께 성찰해 보고 싶습니다. 그 시간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 줄 위대한 희생을 준비하시는 때였습니다. 그 친교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성심이 사랑으로 넘쳐흐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시고, 성령의 오심을 알리시며, 제자들에게 열렬한 사랑과 믿음을 한결같이 간직하도록 격려하십니다.

우리 구세주의 열렬한 기도는 겟세마니 동산에서도 계속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수난이 시작될 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온갖 모욕과 고통이 임박하였습니다. 죄인들이 매달리는 무자비한 십자가, 주님께서 그토록 열망하시던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루카 22,42). 그러시고는 곧이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 나중에, 영원한 사제의 모습으로서 두 팔을 넓게 펼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말씀하십니다.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또 하나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에서조차 서로 모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닮으라는 초대를 우리가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자신이 존경하는 분, 자신이 선택한 이상형과 조금씩 조금씩 같아지려고 노력합니다. 우리의 행동 방식은 우리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정해집니다. 우리의 스승은 거룩하신 성삼위의 제2위격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 곧 사랑의 친교에 참여할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이 열릴 것입니다.

때때로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국을 따라갈 힘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분의 지상 생애 동안 그분을 알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스럽게 몇 마디를 건네 보십시오. 그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우리에게 낳아 주신 성모님께, 그다음에 사도들에게 말씀을 드리십시오.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렸다”(요한 12,20-22). 여러분은 이 장면에서 용기를 얻지 못하십니까? 그 이방인들은 감히 주님께 직접 다가가지 못하였지만, 좋은 중재자를 찾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