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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길»에 극기 → 내적 고행 항이 있음.

“안돼”라고 말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농담을 삼가는 그 정중한 말. 그대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명랑하게 미소짓는 것, 부당한 비난을 받을 때 침묵하는 것, 재치없고 거북한 사람들과도 친절하게 대화하는 것, 함께 사는 사람들이 불쾌하게 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것을 매일 봐주는 것…. 이 모든 것을 끈기있게 참아내는 것이야말로 단단한 내적 금욕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말하지 말고, ‘저 사람이 나를 성화시킨다’고 생각하십시오.

자신의 판단을 기꺼이 양보하는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어렵지요… 하지만 그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내적 금욕. 그대가 감각의 금욕을 멸시하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대의 내적 금욕을 믿을 수 없습니다.

도량이 좁고 성질이 급한 상사 밑에서 일하는 어느 영혼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참으로 성스러운 이 보물을 주셨으니 말입니다.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를 당나귀처럼 뒷발로 걷어차는 사람을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부정적인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칭찬해줄 수 없다면, 입을 다무십시오.

그럴 만한 이유가 많다 해도 그대의 형제를 헐뜯지 마십시오. 먼저 감실로 가십시오. 그리고나서 그대의 영적 아버지인 사제에게 가서, 그대를 괴롭히고 있는 내용을 털어놓으십시오.

그 밖에 어느 누구에게도 가지 마십시오.

험담은 사도직을 더럽히고 방해하는 쓰레기입니다. 그것은 애덕에 거슬리고, 힘을 빼앗고, 평화를 앗아가며, 하느님과 일치하지 못하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완전히(!) 낭비하고 있는가. 쉼없이 지껄이고 또 지껄이면서. 그 모든 지껄임의 결과들이란! 나는 그 결과들을 목격한 후, 침묵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사랑스러운 것인가를 더 잘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주님, 저는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당신이 왜 쓸데 없이 지껄이는 말은 모조리 심판에 부치겠다고 하셨는지 말입니다.

말하는 것이 실천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도끼처럼 싹뚝 잘라버리는 그런 혀를 갖고 있는 그대는 우연히라도, 남들이 그대의 ‘권위적인’ 의견대로 잘해내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잘’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이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근거림, 뒷공론, 고자질, 험담, 뒷북치기, 혹은 중상? 아니면 배반? 

’판단의 직무’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판단을 할 때, 그 판단은 ‘노파의 쑥덕거림’으로 끝나지 않기가 힘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