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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밭고랑»에 극기 → 내적 고행 항이 있음.

진리가 지켜지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하느님을 불쾌하게 해드리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도 충돌하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느님과 세상은 대립관계입니다.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희생은 모든 것이 타버리는 전번제(全播祭)여야 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말할까'라는 걱정, 그리고 평판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것을 다 태워버려야 합니다.

‘거룩한 뻔뻔스러움’은 복음 속에 매우 깊은 근거를 갖고 있음을 이제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하느님의 뜻을 수행하십시오. 다음 일들을 깊이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곧 예수께서는 거짓으로 고발당하셨고, 예수께서는 침뱉음을 당하시며 얻어맞으셨고, 예수께서는 보잘것 없는 모임들 앞에 끌려나가셨으나···, 예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결심: 모욕을 당하더라도 참고, 굴욕감이 뒤따르리라는 것을 각오하고, 우리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우리들에게 맡기기를 원한 하느님의 일로 서 참으십시오.

마치 그대가 중심이나 되는 것같이 그대가 모든 것을 당신 자신을 싸고 돌게 만들기 때문에 그대는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그대는 배가 아프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피곤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네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했고···

그대는 주님 하느님에 관해서, 그리고 주님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 관해 생각해 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까?

처음의 열성이 있은 후에 동요와 망설임,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공부, 가족, 경제적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대가 그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는, 아마도 그대는 쓸모가 없으리라는, 그대는 인생에 경험이 없다는 생각으로 걱정합니다.

제가 그대에게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확실한 방법을 드리겠습니다.

악마의 유혹이거나 관용의 결핍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두려움을 극복할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겠습니다. 그것은 ‘무시하기’, 그러한 생각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벌써 2천년도 전에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점을 알려주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 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만약에 당신 자신에 관한 생각들로 그대의 상상력이 넘쳐 흘러서 정상적으로는 그대의 도리에 어울리지 못할 환상적인 상황들과 환경들을 창출해 낸다면, 어리석게도 당신의 마음을 빗나가게 하고, 차갑게 해, 하느님의 현존으로부터 갈라놓을 것입니다. 이것이 허영입니다.

만약에 그대의 상상력이 남을 중심으로 돌아가면 그럴 사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남을 심판하는 결점에 빠져들 것입니다. 또한 남의 행동에 대해 객관적이지도 않고 비열한 해석을 내리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경솔한 판단입니다.

만약에 그대의 상상력이 당신 자신의 재능이나 말투, 혹은 다른 이가 그대에게 감탄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된다면 강직한 의도를 잃고 자만심을 조장할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상상을 풀어헤치면 시간 낭비가 되고 상상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연이은 유혹에게 문을 열어 놓는 셈입니다.

단 하루도 내적 금욕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더 나은 일을 하고, 더 결연한 태도를 취하고, 더 열의를 나타낼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는지 당신은 자문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당신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수많은 마음의 문 중에서 가장 방비가 약한 것이 사람의 어리석음, 즉 허영심이라는 것을 충분 이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근처를, 전력을 다해 공격하고 있습니다. 감상적인 추억에 잠겨 있을 때나 히스테릭한 시각으로 의붓자식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버릴 때, 자유가 없다고 함부로 생각해 버릴 때 등을 노리고 덮쳐 오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멋대로 상상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스스로 고통을 조성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중에 진짜 고통과 장애가 닥쳤을 때 성모 마리아처럼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에 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들에 관해서 우호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특히 그대가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관해서 말할 때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침묵을 지키십시오. 날카롭거나 또는 짜증나게 하는 비판은 뒷공론이나 비방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더욱 전폭적으로 바친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제가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덜 이야기하고, 병자를 심방하고 마루바닥에서 잠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사제들에 관해서는 오직 그들을 칭찬하기 위해서만 말해야 합니다.

나를 포함해 모든 사제가 이 점을 깊이 생각하고 매일 처신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