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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밭고랑»에 성체성사 → 성체성사의 생활 항이 있음.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 빵의 형상 속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산 제사가 행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주님의 살을 가지고 그리고 주님의 피를 가지고, 주님의 영혼을 가지고 그리고 주님의 신성을 가지고 거기에 계십니다. 주님은 토마스가 주님의 영광스러운 상처 안에다 자기 손가락들을 놓았던 그 날의 주님과 같으십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퍽 많은 경우에, 그대는 주님을 만났을 때 그대가 아는 어느 사람에게라도 보여 줄 만한 단순히 좋은 예절에서 나오는 가벼운 인사표시도 보여드리지 않은 채 어슬렁거리고 지나갑니다.

그대는 토마스보다 훨씬 덜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대에게 자유를 얻어 주기 위해, 그대의 절친한 친구가 교도소로 갔다면, 그대는 그를 찾아가고, 한참 동안 그에게 이야기하고, 그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가고, 그를 위로해 주고, 그에게 당신 우정의 따사로움을 보여 주려고 시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 재소자와의 대화가 그대를 어떤 죄악에서 구해 주고 그대에게 선익을 준다면, 그대는 그 대화없이 해나가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한 친구 대신 그것이 그대의 아버지거나 또는 그대의 형제라면, 그 때에는 어떻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우리들 곁에 머물러 계시고, 우리들을 떠받쳐 주시고, 우리들을 인도해 주시기 위해 우리들을 위한 성체로 남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서만 갚아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들이 매일 몇 분 동안이라도 주님께 우리들의 인사와 우리들의 자녀로서와 형제로서의 사랑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성체로 향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 늙은 하사관이나 혹은 한 젊은 위관이 훤칠하게 생긴 어느 신병이 그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을 보는데, 그 신병은 그 장교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이나 더 나은 자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경례와 답례는 여전히 행해집니다.

이와 대조되는 일을 묵상해 보십시오. 저 교회의 감실로부터, 그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그대에게 주시는, 완전한 하느님이시며,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그대는 주님께 아무런 주의도 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그대는 매일 성체를 조배하기 시작하였고, 그대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습니다. “저는 감실등을 미친 듯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겪으시는 모든 신성 모독에 대한 보속으로 매일 적어도 한가지의 영적 교섭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우리들이 주님을 찾아뵙는 빈도는 다음의 두 가지 요인에 비례합니다: 신앙과 마음, 다시 말해 진리를 보고 그것을 사랑하느냐 마느냐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