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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기도 → 마음 기도 항이 있음.

기도할 때는 담대해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은 비관적인 그대를 낙관적인 사람으로, 겁쟁이를 담대한 사람으로,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에서 신앙인 즉, 사도로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실수를 하면, 날리는 먼지로 인해 당신은 장님이 되고 실망하지만, 그뿐 아니라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의 평안마저 잃게 됩니다.

짐을 벗기 위해 주님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신 형제에게 마음을 털어놓았습니까?

우리의 의무를 알고 있으면서, 온 하루를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기억하지 않고 지나가버리게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매일 하는 묵상 중에, 우리는 언제나 일들을 바로잡아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도(正道)에서 떠나가게 됩니다.

만약에 그대가 기도를 포기한다면 처음에는 영적인 적립금으로 살 것이고, 그 후에는 속임수로 살 것입니다.

그대는 기도해 오고 있지 않았습니까? 왜, 시간이 없어서였습니까? 그러나 그대는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다, 그대가 무슨 종류의 일들을 할 수 있겠나요? 만약에 그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주님의 현존 앞에서 그것들을 묵상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 하느님과의 대화 없이 어떻게 그대의 나날의 일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그것은 마치 가르치느라고 너무 바빴기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연구 없이는 그대는 잘 가르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모든 일 앞에 와야 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이 점을 이해하지 않고 그 일을 시행한다면, 저에게 그대가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순히 그대가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거룩한 친교와 확고한 결의의 시간입니다.

수태고지(受麟諾知)의 장면은 대단히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얼마나 자주 묵상했는지오. 마리아는 기도 중에 되돌아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 말씀드리기 위해 자기 감각과 자기 기능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성스러운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은 기도 중에서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로써 성모님께서는 그 일을 자기 생활 중의 일부로 만드십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결코 잊지 않기를.

‘묵상’이라는 말을 듣고 당신은 놀랄지도 모릅니다. 낡은 검은 표지의 책과 한숨이나 단조로운 반복 같은 기도를 떠올리니까.그러나 그런 건 묵상이 아닙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버지이시며 그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주신 것과 장차 받게 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대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당신 나날의 생활 중의 모든 훌륭한 행위에서의 아버지이심과, 친구이심과, 충고자이심과 원조자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게 되는 일은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겨우 극히 한정된 지식 밖에 얻을 수 없는데, 당신은 매일 끈질기게 수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왜 악착같이 스승이신 예수님한테 가지 않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맛과 내실을 가진 내적생활을 가르치고 싶은데 말이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나 지상 최고의 보상도 늘 그대를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값어치도 없지 않겠습니까.

매일 잠시 동안씩 묵상하여 하느님과 우정으로 결합하는 것은 그들의 생활을 좋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따라 생활하는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