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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는 기도를 주제로 하는 20 항이 있음.

우리의 의무를 알고 있으면서, 온 하루를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기억하지 않고 지나가버리게 내버려둘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매일 하는 묵상 중에, 우리는 언제나 일들을 바로잡아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도(正道)에서 떠나가게 됩니다.

만약에 그대가 기도를 포기한다면 처음에는 영적인 적립금으로 살 것이고, 그 후에는 속임수로 살 것입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그리고 정해진 시간에 묵상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편의를 먼저 내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수행(修行)의 결핍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행없는 기도는 전연 효과가 없습니다.

그대는 내적생활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대가 기도 중에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와 개종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대가 사물을 명확하게 보고,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이룩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대가 그대의 공부에서, 그대의 일에서, 그대의 대화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초자연적 시각을 지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데서 살고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의 기도의 결과이고 현시(顯示)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기도해 오고 있지 않았습니까? 왜, 시간이 없어서였습니까? 그러나 그대는 시간이 있습니다. 거기다, 그대가 무슨 종류의 일들을 할 수 있겠나요? 만약에 그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주님의 현존 앞에서 그것들을 묵상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 하느님과의 대화 없이 어떻게 그대의 나날의 일을 완벽하게 끝낼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그것은 마치 가르치느라고 너무 바빴기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연구 없이는 그대는 잘 가르칠 수 없습니다.

기도는 모든 일 앞에 와야 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이 점을 이해하지 않고 그 일을 시행한다면, 저에게 그대가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순히 그대가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더 기도하십시오. 그대가 시험들을 치고 있고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금 이 말을 하는 것은 기이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기도가 필요하고, 그리고 봉헌의 훈련으로서의 습관적인 기도뿐만 아니고; 그대는 또 여분의 순간 중에 기도하고, 그대의 마음을 어리석은 생각들에 방황하게 내버려두는 대신 짬짬이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대가 정신을 집중시키거나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하는 일을 해내지 못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 묵상은 그대가 소성당 안에서 아주 쉽게 했던 묵상보다는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하느님의 현존을 이룩하는 효율적인 습관이 있습니다: 매일 그대의 최초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와 해야 합니다.

기도는 수도자의 특권은 아닙니다: 기도는 자기네들이 하느님의 자녀임을 아는 이 세상의 남녀가 하는 그리스도인의 일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대는 그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관상적(觀想的)인 소명을 가진··· 행동인.

기도 없는 가톨릭 신자? 그것은 무기 없는 군인과 같습니다.

당신으로 하여금 “오직 한가지 일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그대에게 허락하신 엄청난 선물에 대해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그 감사드림과 함께 아직 이 의무에 관해 아무 생각도 갖고 있지 않거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대의 청원하는 기도가 매일 빠짐없이 올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그대를 위해 고기를 잡고 있었을 때, 당신 자신에게 어디에서 저들은 저러한 힘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을 얻었을까 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기도를 하므로, 이 힘과 불이 참된 하느님의 자녀들 속에서 솟아오르는 원천임을 인식합니다.

지성과 연구를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로사리오가 극히 효율적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그들의 모친에게 하는 것같은 우리 성모님을 찾는 그 뚜렷이 단조로운 방법은 허영과 교만의 모든 씨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죄 없으신 동정녀시어, 저는 가련한 놈이고, 제가 한다는 짓은 기껏해야 매일 제 죄의 수효를 늘이는 것··· 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대가 우리 성모님께 말씀드린 것이었음을 그대가 전날 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신있게 그대에게 거룩한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확신을 가지고 충고하였습니다. 그대의 죄의 단조로움을 정화하는 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의 단조로움에 축복이 있을지어다!

묵주기도를 바치지 않는 한가지 슬픈 방법은 그것을 하루의 끝으로 미루는 것입니다.

취침하러 갈때 묵주기도를 바친다면 기껏해야 나쁘게 그리고 신비에 대한 묵상없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진정한 경건성을 몰각시키고, 단지 명목뿐인 기계적인 것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묵주 기도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를 번갈아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면서, 입술로만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나치게 경건한 늙은 남녀가 허겁지겁 그것을 해치우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낭송기도는 반드시 마음에서 솟아나와야 하거니와, 그렇게 하면 묵주기도가 바쳐지는 동안, 마음이 하나하나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대는 언제나 묵주기도를 뒤로 미루고는, 졸리기 때문에 전연 바치지 않고 맙니다. 만약에 다른 시간이 없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거리에서 바치십시오. 더군다나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갖는 것을 도와 줍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하고 제가 언제나 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놀라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늘 문제이거나 일어나거나 한다는 것을 설명해야 했으며; 그리고 기도가 결핍될 때는, “더더욱 무거워지는 일들이 문제임”을 추가했습니다.

하루 종일 통회의 기도를 반복하십시오. 끊임없이 예수를 모욕하지만 같은 속도로, 즉 끊임없이 속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통회의 기도는 많은 것이 좋다고 되풀이해 왔습니다. 당신의 행동과 권유로 내가 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수태고지(受麟諾知)의 장면은 대단히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얼마나 자주 묵상했는지오. 마리아는 기도 중에 되돌아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 말씀드리기 위해 자기 감각과 자기 기능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성스러운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은 기도 중에서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로써 성모님께서는 그 일을 자기 생활 중의 일부로 만드십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결코 잊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