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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평화 → 평화의 뿌림 항이 있음.

그대가 희생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주위에 퍼뜨릴 때, 그대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고통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평화와 기쁨의 씨앗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병사’.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을 병사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의 군대에는, 모든 사람의 행복을 찾아 싸우고, 사랑과 평화를 위해 축복된 그리스도교적 전투에 지쳐, 배가 고프고, 상처투성이지만 기쁨에 넘치는 병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병사들은 가슴에 확실한 승리의 빛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와 기쁨을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 가져다 주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신의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십자군이 되어, 슬퍼하는 마음과 썩은 마음을 흔들어 일으켜서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우리는 이 세상을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즉 '하느님이 그토록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계야말로 그리스도가 되찾아 주신 평화를 얻기 위해 우리가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 즉 애덕의 아름다운 싸움을 계속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거친 성격에 대항하여, 이기주의와 편안함을 찾는 정신과 혐오감에 대항하여 싸우십시오. 우리들은 공동 구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그대가 받는 상은 그대가 해낸 씨뿌림과 아주 직접적인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은 악이 풍성한 선 안에 빠져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극적인 운동의 문제이거나 무엇인가 반대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들은 낙관에 가득차서 젊음과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그리고 주님을 포기하거나 주님을 전연 모르는 사람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해함이란 머뭇거리거나 무관심하게 머물러있음을 의미하지는 않고, 능동적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인간적인 선한 예의범절을 통해서 그대는 당신과 다른 누구와의 사이에 다리 놓을 수 없는 거리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이 진리에서 더 멀리 벗어날 필요가 없도록 다른 사람들을 위해 출구를 하나 남겨 놓아야 합니다.

폭력은 어느 누군가를 이해시키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사도직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뒷전에서 험담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나는 그 관련자에게 일러 줄 것이오” 또는 “나는 그에게 그 일에 관해서 말할 것이오”.

현대의 저자가 이렇게 썼습니다. “험담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그것은 저질스러운 사람임을 드러내며, 그것은 교육을 받지 못한 표시이니, 그것은 감정의 세련이 결핍되었음을 보여 주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치가 없는 짓이다”.

그대는 언제나 불평하는 짓과 비판하는 짓과 험담하는 짓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대는 무슨 일이건 형제들 사이에 불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상을 받았을 때 취해야 할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순간부터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십시오. 이어서 사랑하는 것, 즉 애덕에 어긋나는 일이 하나도 없도록 항상 사랑의 마음으로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격이 어머니 교회에 대한 것이라면 용감하게 변호해야 합니다. 침착하되 단호한 태도와 용기로 가득 찬 고결한 마음으로 길을 더럽히거나 방해받는 일이 없도록 싸워야 합니다. 이는 개인적으로 모욕을 당하고도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응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