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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사랑(애덕) → 가정에서 자선 항이 있음.

남편과 아내가 전혀 다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싸우지 마십시오. 그러면 아이들이 상처를 입게 됩니다.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편을 들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부부의 일치를 저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가 아니라면 부부싸움은 오히려 사랑의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부부간에 필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부부가 싸우게 되는 상황을 보면 대개 이렇습니다. 남편은 일에 지쳐서 피곤합니다. 권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내도 피곤합니다. 아이들과 온갖 집안일에 치이기 때문이지요. 아내의 심성이 굳세지 않거나 인내심이 강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마음먹기만 한다면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자만하지 마십시오. 자만심은 여러분 결혼생활의 가장 큰 적입니다. 여러분이 사소한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과 아내 중 어느 누구도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 중 더 침착한 쪽이 먼저 한 두 마디 말을 건네서 서로의 나쁜 성질이 드러나는 걸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부만 남았을 때 계속 의논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곧 평화가 찾아들 것입니다.

아내들께서는 혹시나 여러분의 외모를 챙기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았나 자문해보십시오. 여성은 스스로를 예쁘게 가꿔야 한다고 말하는 여러 속담들을 기억하십시오. 결혼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의 용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아내의 의무이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또한 정당한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남편에게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들 또한 자신들이 아내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러니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한사랑에 빠졌던 젊은 시절과 똑같은 애정을 서로에게 드러내 보일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얘길 듣고 빈정대며 웃는다면 그것은 좋지 않은 징후입니다. 당신의 사랑이 차가운 무관심으로 변했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밝고 활기찬 가정 

가정을 얘기하지 않고 결혼에 대해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은 결혼의 결실이요 그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포함하며, 조금 넓게 보면, 조부모와 다른 친척들도 가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가정 안에서 가족의 온기를 함께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은 부부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부부가 더욱 서로 사랑하기를 하느님께서 요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한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선익(善益)에 봉사하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를 갖는 일은 부부에게 일반적이며, 그것이 부부의 첫 번째 관심사여야만 합니다. 부모(父母)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 자녀를 낳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 생명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권능을 더불어 나누는 것이며, 세대를 잇는 연속성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성령과 협력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영적인 문제와 인간적인 문제들을 교육해야 할 의무를 가진 첫 번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모는 신중해야 하고, 이해심이 깊어야 하며, 사랑의 능력을 기르고,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권위적 방식으로 아이들을 강제로 가르치려 드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부모의 가장 이상적인 태도는 자녀들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걱정을 기꺼이 같이 나누고, 그들에게 닥친 문제에 귀기울이며, 효과적이고 기분 좋은 방식으로 그들을 돕는, 그런 친구가 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보내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은 사업이나 일, 휴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화를 나눌 때 부모는 자녀의 얘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관심을 기울이고 이해하려 애써야 합니다. 만약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더라도 아이들의 의견이 부분적으로 때로는 전적으로 옳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녀들이 옳은 방향으로 노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그들이 하려는 일이 올바로 실행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자녀들이 모든 일을 깊이 생각하고 그 이치를 따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는 어떤 행동을 하라고 강요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왜 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인간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동기를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모는 자녀들의 자유를 존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책임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란 진정한 교육이 아니며, 자유를 수반하지 않는 책임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얘기를 경청하십시오. 자녀들에게 여러분의 시간을 내어주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위해 챙겨둔 시간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선뜻 내어주십시오. 여러분이 자녀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주십시오. 그들이 무슨 말을 하건, 때로 여러분을 속이려 들더라도 자녀들을 믿어주십시오. 자녀들이 반항한다고 해서 섭섭해하지 마십시오. 부모인 여러분도 그 나이 땐 어느 정도 반항적이었을 테니까요. 자녀에게 양보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그리스도교적인 태도로 행동한다면, 자녀들도 천진난만하게 여러분께 다가올 것입니다. 그 나이 때에 당연히 가질만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거칠고 상스러운 친구를 찾아가는 대신 부모에게 다가올 것이란 얘깁니다. 부모가 신뢰와 상냥함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들도 진실하게 부모를 대하는 모습으로 응답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시적으로 불화와 오해가 생기더라도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의 평화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초세기 때 한 그리스도인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 의해 맺어져, 남편과 아내의 헌신으로 굳세어진 결혼의 기쁨을 말입니다. 축복으로 다져지고 천사에 의해 선포되어 아버지 하느님께 받아들여진 혼인의 환희를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남매와 같으며, 서로를 섬기는 하인과도 같습니다. 그 무엇도 영육 간에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하나의 육신 안에 존재하는 두 사람이며, 참으로 하나의 육신과 하나의 영성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가정을 기대하시면서 기뻐하시고 당신의 평화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부부가 함께 있는 곳에 그리스도께서도 같이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는 어떤 악(惡)도 있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