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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성체성사 → 통공 항이 있음.

예수님께서는 길이시며 중재자이십니다.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고, 그분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께서 가르치신 대로 우리는 감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우리가 당신께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시는 사랑 가득한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삶에서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가 되풀이되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의 어린 양…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Ecce, Agnus Dei… Domine, non sum dignus…). 우리는 우리의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맞이할 때에 우리는 등불과 음악, 격식을 갖춘 옷 등 최상의 것들을 꺼내옵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때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인생에 단 한 번 그분을 맞이할 수 있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성체를 자주 모시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영성체를 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지 기억합니다. 성체를 모시려면 영육 간에 모든 것이 올곧아야 했습니다.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머리도 잘 단장해야 했습니다. 신체적인 청결함도 중요했고요. 아마 향수도 몇 방울 뿌렸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온갖 정성을 들여 영성체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사랑으로 사랑을 되갚을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미사를 마칩니다. 이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축복이 우리와 온종일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정직한 사람들의 활동을 거룩하게 만드는 단순하고도 일상적인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미사에 참례하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세 위격과 개별적으로 깊은 친교를 맺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성자를 낳으신 아버지 하느님과 성부에 의해 탄생하신 성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시는 성령… 하느님의 이 세 위격과 각각 친교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 위격 중 어느 한 분께 다가서면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부와 성자 성령께 모두 가까이 갈 때 우리는 다시 진정한 한 하느님의 현존 안으로 들어섭니다. 미사를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이 아무리 차갑더라도 영성체를 통해 우리 주님을 모시기를 갈망하십시오. 여러분의 감정이 여러분의 열망에 화답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믿음과 희망과 불타는 사랑으로 성체를 영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의 임금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의미의 다스림을 상상하려 해선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지배하시거나, 군림하시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기” (마태 20,28) 때문입니다.

그분의 왕국은 평화와 기쁨과 정의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관념적 추론에 시간을 낭비하길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행동을 기대하십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치유자(治癒者)이십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을 우리의 영혼 깊이 스며들게 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이기심을 낫게 해주십니다. 가장 나쁜 병은 위선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위선은 우리들 자신의 죄를 숨기게 만드는 교만인 까닭입니다. 우리는 그분께 온전히 진실해야 합니다. 그분께 온전히 진리만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얘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원하시는 바를 말하십시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 8,2). 주님은 제 약점을 아십니다. 그런 조짐을 저도 느낍니다. 제 결점들 때문에 저도 고통받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께 상처를 보여드립니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대놓고 보여드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상처가 곪았다면 그 고름까지도 보여드려야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수많은 영혼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러니 제 마음에 당신을 모셨을 때, 또는 감실에 계신 당신의 현존을 제가 묵상할 때, 당신이야말로 거룩한 치유자임을 제가 깨닫도록 도와주소서.

그분은 스승이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하느님을 향한 한없는 사랑을, 하느님 안에 계신 무한한 사랑을, 인간을 향한 끝없는 사랑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우리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웁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따른다면, 다른 사람들과 고통을 나누지 않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우리 삶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섬기며 살아가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며, 여러분의 말과 모범을 통해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그리스도교적 헌신의 정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마음에 품길 기대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요한 7,37) 그리고 우리는 대답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도록 가르치소서. 그래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당신과 다른 사람들을 대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면, 우리가 글씨 쓰는 법을 배울 때와 똑같이 우리 주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마구잡이로 글씨를 쓸 때 선생님이 손을 잡고 글쓰기를 직접 가르쳐주셨던 기억을 갖고 계시죠?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보이는 기쁨을 맛보기 시작할 겁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기쁨 또한 맛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우리의 행동에서 모두가 하느님의 경이로움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 불렀다.” (요한 15,15) 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친구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분은 당신의 사랑을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사랑을 주실 뿐입니다. 그분은 가장 분명한 표징으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그분은 라자로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은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고 그를 위해 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만약 우리의 내적 삶이 죽어 뻣뻣해져서 냉정하고 반항적이며 완고해져 버린다면, 그 모습을 보시고 그분은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내 친구여, 일어나 걸어라.” (요한 11,43, 루카 5,24) 그러니 주님께서는 결코 삶이라고 할 수 없는 그런 편협한 삶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 기도의 시간을 마쳐야 하겠습니다. 우리네 영혼의 친밀함 속에서 하느님의 무한한 선하심을 맛볼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과 피와 영과 신성(神性)으로 성체 안에서 당신 자신을 현존하게 하실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온 힘을 다해서 그분을 경배하십시오. 그분의 현존 안에서 여러분 사랑의 참된 봉헌을 새롭게 하십시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그분께 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애정 어린 당신 자비의 증거를 매일 우리에게 보여주심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의 영과 통교할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을 격려하십시오. 이 사랑의 신비가 저는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제 마음을 왕관으로 쓰고자 하시는 분, 바로 우리 주님께서 여기 계십니다. 제가 그분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한 결코 저를 떠나지 않으실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그분의 성체를 양식으로 삼으면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충실할 것이고, 그런 뒤에 천국에서 예수님과 그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1코린 15, 55,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