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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랑의 담금질»에 내적 생활 →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항이 있음.

하느님께서는 그대에게 유치하고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진 예전의 “내적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음을 그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그 영웅적인 ‘사소한 것들’에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동안 항구하게 인내해야 합니다. 그대는 그대의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감정은 선을 깨닫는 데 너무나 더디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행하려는 의지가 차갑게 식었을지 모르지만, 사랑으로 그 사소한 의무들을 이행하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면 잠잘 때조차도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에게 하느님과의 일치가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대는 하느님의 뜻과 겨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대가 잘 알고 있듯이, 그것이 그대의 나약함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주 많은 것이 그대에게는 없다는 그 사실을 사랑하십시오. 그대가 그대의 길을 출발하면서 또는 계속 가면서 만나는 장애물들을 사랑하십시오. 그대가 아주 보잘것없고 영적으로 비참하다는 것을 사랑하십시오.

그대가 가진 모든 것과 그대의 사람들에게 속하는 모든 것을 실제로 봉헌하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봉헌하십시오. 인간적으로 보면 꽤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자연적 빛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때때로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신부님, 저는 지쳤고 차가워졌다고 느낍니다. 기도할 때나 다른 어떤 신심을 실천할 때, 마치 코미디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그리고 그대가 그 친구와 같은 처지라면 그대에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코미디라고요? 아들이여, 훌륭한 일입니다. 그 코미디를 하십시오! 관객은 주님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코미디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 복되신 삼위일체께서는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 삶이 온통 쭉정이가 되어가고 있을 때,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사랑으로 하느님 앞에서 하는 코미디 같은 행동. 하느님을 위해 재주를 부리는 것이 얼마나 멋집니까!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자, 희생으로, 아무런 개인적 만족도 없이, 사랑을 위해 자신 몫을 하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사랑의 삶입니다.

그대는 너무나 많은 빛을 보아서 조금 두려워했습니다. 너무나 밝아서 쳐다보기가 힘들고 심지어 빛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고 생각했군요.

그대의 명백한 비참함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십시오. 대신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향해 그대 영혼의 눈을 뜨십시오. 그대의 영적 지도자가 누구이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그대를 인도하시도록 하면서 계속 나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