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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는 십자가를 주제로 하는 11 항이 있음.

멋대로 상상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스스로 고통을 조성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중에 진짜 고통과 장애가 닥쳤을 때 성모 마리아처럼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희생, 희생. 하긴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십자가니 포기니 하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희생이요, 기쁘고, 십자가는 성스러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하고 이렇게 스스로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은 기쁨과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위로를 구하듯 희생이란 말만 집요하게 합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당신의 생명-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데.

가톨릭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다운 삶,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어려움을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축복으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치면 신경쇠약과 히스테리는 거의 사라질 텐데.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그 사람-친척, 친구, 동료, 그대에게 낯선 그 사람-은 그대의 형제입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것을 여러 번 슬픈 마음으로 읽은 것을 기억하십시오. 심지어 친척들조차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지상에는 단지 하느님과 당신만이 있다고 상상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굴욕을 당하는 것이 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 그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혼을 다해 병든 사람이 말했습니다. “가끔 몸이 반항하고 불평하지만 ‘그런 탄식’을 애써 미소로 바꾸려고 해요.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그것들은 매우 효용있는 것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불치병 때문에 활동이 제한됐지만 그 사람은 선뜻 잘라 말했습니다. “아픈 쪽에서 꽤 잘 처신해 줘서 병을 매일 더 깊게 사랑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이런 상태로 태어나고 싶어요.

예수님은 33년간, 즉 생애를 걸쳐 준비한 후에 십자가로 향하셨습니다.

제자가 진정으로 주님을 닮고 싶다면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스스로를 부정해 전 생애를 사랑의 속죄로 바꿔야 합니다.

십자가는 어디에나 있고 예상치 못한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유념해 두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는 그대가 능률이 나기 시작할 때에 온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사제이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십자가로 강복하십니다.

"고통받는 마리아의 성심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대의 죄와 모든 시대 사람들의 속죄를 위해 성모님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삼도록 굳게 다짐하고 거룩하신 마리아의 성심께 간청하십시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성모님께 청하십시오. “성모님, 당신의 슬픔으로 인해 우리가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더하고, 또 매일매일의 물심양면의 어려움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