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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기쁨 → 기쁨과 내적 삶 항이 있음.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인생 행로가 뻗어나가는 길이 이것입니다. 곧 고난 —그리스도 교적 용어로는— 십자가; 하느님의 뜻, 사랑; 행복은 여기에서부터, 이후에도 또 영원한 것입니다.

기쁨 속에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저는 기꺼이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이 기쁨은 저의 믿음,희망,사랑의 결과이며,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입니다. 사도인 성 바오로가 보증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저를 바싹 따라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과 함께 아주 자신있게 걸어가겠습니다. 주님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해서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주님의 도움으로 저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 지극히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거듭 강조한 바 있는 한가지 충고: 명랑하십시오, 언제나 명랑하십시오. 이 충고는 자신들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생각하지 않는 저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대는 빛과 색채가 가득한 마음으로 매우 기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예전 같으면 낙담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 지금은 기쁨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그대가 보기에 달렸습니다. 그대가 주님을 찾을 때에는, 그대의 마음은 언제나 행복에 넘쳐흐릅니다!

신앙이 없고, 자기네 실존의 공허함 때문에 슬프고 주저하며, 풍향계같이 “변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초자연적 목적을 알고, 굳게 믿기 때문에 기쁨과 확신에 넘쳐 제대로 서있는 우리들의 인생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 친구는 느닷없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하느님을) 사랑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저는 놀라서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묻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기쁨으로 빛나는 제 눈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에 찬 눈빛은 어땠을까요? 어머니의 걷잡을 수 없는 기쁨에 찬, 빛나는 눈빛과 같을 터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 하나이다!.’ 주님을 태중에 모시고, 곁에 모시고 생활하기 시작한 이래로 성모님의 영혼은 주님을 계속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을 놓치지 않는 기쁨을 항상 유지할 수 있기를.

그대는 유혹에 빠져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눈과 상상을 희롱하며 바보같은 수다를 떱니다. 그런 뒤 의심과 소심, 당혹, 슬픔, 낙담에 사로잡혀 놀랍니다.

일관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세상 끝날 듯 아욕을 추구하기 때문에 결국은 열심히 슬픈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거짓말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슬픈 사람들 틈에 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전에는 그대는 무척 많이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지금, 그대의 전체 생활은 진지하고 남을 감화시키는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매료합니다.

그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주님을 더 잘 알게 되십시오.

고된 일을 앞에 두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여러분은 좋아서 열심히 일하시는 거냐고 했더니, 기쁨에 차서 침착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좋아해서 열심히 한다고요? 그런 동기로 일을 하다니, 너무 아깝습니다. 저희는 끊임없이 기다리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하는 겁니다.”

그 친구는 진심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늘 우리들의 친구이신 분과 함께여서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깊은 정적이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현존함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이럴 때 이 얼마나 평안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