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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 거룩함과 목독 항이 있음.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 무한한 자기 봉헌의 스승. 그대는 기억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면 그는 —그녀는—내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모님에 대한 찬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에 찬 눈빛은 어땠을까요? 어머니의 걷잡을 수 없는 기쁨에 찬, 빛나는 눈빛과 같을 터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송 하나이다!.’ 주님을 태중에 모시고, 곁에 모시고 생활하기 시작한 이래로 성모님의 영혼은 주님을 계속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을 놓치지 않는 기쁨을 항상 유지할 수 있기를.

하느님이 그대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성스러운 담대함을 실행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세요. 성모님은 겸손의 길을 걷는 그대를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면 무리라고 생각되는 일에도, 하늘과 땅을 하나로 만드는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멋대로 상상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스스로 고통을 조성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중에 진짜 고통과 장애가 닥쳤을 때 성모 마리아처럼 십자가 아래서 그리스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정년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도다…” 진정한 겸손이야말로 모든 덕의 초자연의 기초임을 날마다 더욱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성모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전례(典禮)는 다음의 노래로 기뻐집니다: 오 마리아여, 그대는 원죄 없이 모두가 아름다우십니다! 성모님에게는 이중성의 그늘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 지도를 받을 때 숨김없이 마음을 열 수 있고, 은혜의 빛이 우리의 행실을 훤히 밝혀 달라고 저는 날마다 성모님께 부탁드립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성실해지기 위한 용기를 얻어주십니다. 우리가 성모님께 부탁드린다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인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의 눈을 복되신 동정녀께로 돌려서 얼마나 성모님이 신의의 덕행을 실천하시는가를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복음서는 이르기를 “기뻐하며 서둘러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본받으십시오!

수태고지(受麟諾知)의 장면은 대단히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얼마나 자주 묵상했는지오. 마리아는 기도 중에 되돌아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께 말씀드리기 위해 자기 감각과 자기 기능을 모두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성스러운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된 것은 기도 중에서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로써 성모님께서는 그 일을 자기 생활 중의 일부로 만드십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결코 잊지 않기를.

“믿으셨으니 복되십니다,”라고 엘리사벳이 우리 성모님께 말했습니다. 초자연적 덕행인 하느님과의 일치는, 언제나 그것과 함께 매력있는 인간적 덕행의 실천을 가져옵니다: 성모님은 자기 사촌집에 기쁨을 가져갔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데리고 갔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마리아여, 상지의 옥좌여”. 우리들의 성모님께 자주 그런 방법으로 호소하여, 주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 그들의 공부와, 일과, 사회적 관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가져다 주신 진리를 채워 주시도록 하십시오.

요셉에게까지도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신비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교훈은 우리가 경솔하게 이야기하는데 익숙해지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슬픔을 칭찬이나 동정을 구하는 일없이 올바르게 이끄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을 위하여!”

한 거만한 사람을 보고 하느님이 하신 엄하지만 정확한 말씀을 들었을 때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는 악마와 똑같은 가죽 —교만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내 마음에 “나는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덕을 몸에 지니고 싶다는 성실한 소망이 마음에 솟아났습니다. 겸손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시선을 주님의 모친이시며 우리들의 모친이신 분께로 끌어당겼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이 무(無)임을 자각하고 그것을 느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