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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리스도께서 지나가신다»에 초자연적인 생활 → 성모님과 내적 생활 항이 있음.

그리스도의 어머니,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 

1935년 이후 저는 여러 차례 성모성지를 방문하는 동안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어머니께 가진 놀라운 애정을 떠올리며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애정을 성모님께 대한 사랑의 응답, 그러니까 성모님께 드리는 자녀로서의 사랑이자 감사라고 여겨왔습니다. 즉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드리는 애정 표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위대한 징표와 아주 깊이 연관돼 있으시니까요. 하느님 사랑의 가장 위대한 징표란 바로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스스로 우리 인간의 죄와 나약함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당신이 태어나신 거룩한 목적에 충실하심으로써 성모 마리아께서는 인간에게 봉사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투신하셨습니다. 인간은 당신 아들 예수님의 형제가 되도록 부르심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어머니는 또한 참으로 인간의 어머니이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성모님이 모든 인간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미래 세대들도 그 사실을 알기를 바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요한 성인에게 영감을 주셔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어,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요한 19, 25-27).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 요한은 성모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자신의 삶 속으로 모신온 것이지요. 영성가들은 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을,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성모 마리아를 그들의 삶 안에 모시도록 초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확실히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확신에 차서 당신께 다가오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당신이 우리 어머니이심을 보여주소서”라고 간청하며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알고 당신께 호소하길 바라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간청을 미리 아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를 알고 계시기에 우리를 돕기 위해서 아주 빨리 오시는 분입니다. 성모님의 손길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온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성모님이 우리 어머니라고 느낄 수 있는 여러 이유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 알아가기 

우리는 매우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어머니께 얘기하고픈 바람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어머니시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성모님을 살아계신 누군가로 대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도 그분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현존 안에서 육신과 영혼으로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을 이해하기를 원하고, 또한 그분께 이끌리며 그분과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신학적 논리에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님이란 진리가 헤아릴 수 없이 심오한 신비이지만 말입니다.

가톨릭 신앙은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는 징표로 여깁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부르십니다. 비록 우리는 여전히 보잘것없는 먼지 같은 존재지만,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서 약동하심으로써 우리는 죄로부터 놓여나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담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주신 이 지혜나 구원을 우리가 이뤄낼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아직 이행되지 않은 약속의 단계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이미 우리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고통스러운 어둠 속에서 울부짖으며 빛을 갈구하는 눈 먼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자녀들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따뜻함과 보호하심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계신 분이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성모님의 이름이 우리의 마음속에 곧바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들 개개인과 어머니와의 관계를 짚어보면, 감미로운 이름의 성모 마리아를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모를 사랑하듯, 우리의 형제 자매들과 다른 가족들, 그리고 친구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똑같은 마음으로 성모 마리아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통의 아들, 딸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대합니까? 물론 조금씩 다르겠지만, 항상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대하지 결코 냉정하게 굴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소하고 평범하지만 아주 친밀한 모습이 어머니를 대하는 평범한 아들, 딸들의 태도이겠지요. 만약 그렇게 평범하지만 친밀한 행동들, 예를 들면 집을 들고 날 때 하는 입맞춤이나 포옹이라든지, 조금 특별한 관심, 그리고 몇 마디의 따뜻한 말 같은 것들이 없다면 어머니는 마음이 상하실 것입니다.

천국에 계신 우리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들 각자의 어머니를 대하는 것과 똑같이 행동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카풀라를 입는 관습을 갖고 있습니다. 또는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에, 그리고 많은 공공장소에 걸린 성화(聖畵)에 인사하는 습관도 있습니다.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사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또 묵주기도를 하면서 그리스도 삶의 중요한 사건들을 떠올립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들처럼 아무리 반복해서 기도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하루를 성모님을 위한 날로 정해 성모님을 위해 조금은 특별한 일을 하면서 그분의 모성적 사랑에 관해서 깊이 생각합니다. 주로 오늘 같은 토요일이죠.

제가 여기서 굳이 얘기할 필요 없이 수많은 마리아 공경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 모든 공경 행위들을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자연적 삶의 성장은 여러 공경 행위들을 거듭하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하지만 그런 공경 행위들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신앙의 풍성함을 누리지 못한다고 저는 얘기하곤 했습니다.

성모님께 대한 공경이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에서 성모 공경이 지닌 깊은 의미를 잊어버린 듯이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이 생겨난 근원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그 근원이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성부의 뜻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한 실제로 인간이 되셔서 여인에게서 태어나신 성자에 대한 사랑이며,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시는 성령에 대한 신뢰입니다. 우리에게 성모 마리아를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성모님을 거부할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 자녀로서의 사랑과 기쁨으로 성모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물어보겠죠. 그리스도에 대한 이 깨달음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러면 저는 아주 자연스럽고 간단하게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직업 생활에 종사하고 가족을 돌보십시오. 그리고 인간의 고귀한 관심사들을 더불어 나누십시오. 또한 모든 사람들의 정당한 자유를 존중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됩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제 마음에 심어주셨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여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건 간에 누구나 그들의 일상적인 삶이 거룩하게 될 수 있으며 하느님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열망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매일매일의 일상적인 일들을 거룩하게 만들도록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성은 바로 일상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삶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성모님께서 당신 삶의 거의 모든 날들을 당시의 보통 여인들과 똑같이 사셨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가족을 돌보고 자녀들을 키우며 집안일을 하는 평범한 여인들처럼요. 성모님께서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상적인 일들이 중요하지 않고 의미도 없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매일매일의 노동,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을 돌보는 일, 친구와 친척들을 방문하는 것 같은 일들을 하찮게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상의 일들이야말로 얼마나 복된 것인지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상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삶을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것, 그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 그 사랑은 너무도 완벽해서 성모님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성의껏 수행하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의 아주 작은 행동조차도 결코 상투적이거나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우리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모범이자 길이십니다. 우리는 성모님 같이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상의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단순하면서도 평범한 삶의 모범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인간 조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온갖 한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흔들림 없는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우리가 자신들과 같은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을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행복해? 이기심과 편히 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덕적으로 살며 타인에게 봉사하기 위해 헌신하도록 누가 당신에게 가르쳐준 거야?’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교인의 거룩한 존재적 비밀을 그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령, 그리고 성모님에 관해 그들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영혼에 쏟아부어주신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기 위해 우리의 초라한 언어를 사용할 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