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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밭고랑»에 그리스도인의 성소 →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다 항이 있음.

“이것은 너무 어렵다”라고 그대는 낙심해서 외칩니다.

들어보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의 은혜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 자신의 이해관계를 한쪽으로 미뤄두면, 그대는 하느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게 될 것이고, 바로 오늘 전쟁이 치뤄지고 있는 싸움터에서 교회를 돕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거리에서, 공장에서, 작업장에서, 대학에서, 사무실에서, 당신 자신의 주변에서, 그대의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유행을 기준으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이걸 납득하고 싶으시면 옛날 초상화 몇 장을 보면 충분합니다.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말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허름한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저의’ 방 안의 대들보 세는 것이 하늘의 별을 세는 것보다 낫거든요.”

이런 사람은 많습니다. 자신의 작은 것을 버리고 하늘에 눈을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더 높이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질 때가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받았으니 하느님 안에 있으면서 세상일에 종사해야 합니다. 다만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하느님께 돌려주는 데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대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대단히 가톨릭적입니다. 기숙사 분위기도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미사는 정오가 아닌 데다 수업도 오전 중이라 술 한두 잔을 한 후에 저녁에 늦게 공부할 수 없는 게 아쉽다고 합니다. 그대의 그 “가톨릭”은 가짜, 단순히 부르주아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대의 나이에 그같이 생각하면 안 되는걸 모릅니까? 나태함이나 자기숭배를 버리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에, 당신 주위의 현실에 스스로를 맞추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의 가톨릭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성인상(聖人像) 하나를 어느 교회에 헌납했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성인은 실재로 모든 것을 저에게 신세졌습니다.”

이것은 풍자 만화일뿐이 아닙니다. 당신도 역시 생각하도록 하심시오 —적어도 그것이 그대의 행위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 그대는 그저 몇 개의 메달들을 패용하거나 또는 모종의 경건한 관습을 다소간 기계적으로 실천하는 것만으로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자유라는 이름으로까지,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좋은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신자를 두려워하고 반대하는 일이 무척 빈번하다는 것은 뚜렷한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