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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고랑»에는 기쁨를 주제로 하는 24 항이 있음.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인생 행로가 뻗어나가는 길이 이것입니다. 곧 고난 —그리스도 교적 용어로는— 십자가; 하느님의 뜻, 사랑; 행복은 여기에서부터, 이후에도 또 영원한 것입니다.

기쁨 속에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저는 기꺼이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이 기쁨은 저의 믿음,희망,사랑의 결과이며,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입니다. 사도인 성 바오로가 보증하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저를 바싹 따라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과 함께 아주 자신있게 걸어가겠습니다. 주님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렇게 해서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주님의 도움으로 저는 주님의 도움을 받아 지극히 사랑스러운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거듭 강조한 바 있는 한가지 충고: 명랑하십시오, 언제나 명랑하십시오. 이 충고는 자신들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생각하지 않는 저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대가 말씀하신 것처럼, 형제들이 그 방법이 쉽다는 것을 알게 되도록 도와 주기 위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힘들여 해내는 일”에서 발견되는 기쁨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 신앙인이 저에게 이렇게 써보내 왔습니다: “그대가 자기 힘으로만 해야 하게 되었을 때 그대는 당신 형제들의 도움을 똑똑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제가 모든 일을 ‘오직 혼자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머리에 떠오를 때, 저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와 멀리 있으나 함께하는 그러한 동반자’ 곧 성인들의 거룩한 통공이 아니라면 저는 제 마음을 채워 주는 이 낙천적인 마음을 보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옆에서 미소를 지어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들은모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그리스도의 적들이 악마적인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은 ‘찡그린 얼굴’을 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리는 극악무도한 계략을 지칠 줄도 모르고 사용합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 중에도 ‘슬픈 표정’으로 덕을 실천하여, 그러한 소문을 퍼트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대는 이런 우승꽝스러운 거짓말을 우리들의 명랑하고 행복한 삶으로 지워버리길 원하셨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 점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그대가 희생이 풍기는 달콤한 냄새를 주위에 퍼뜨릴 때, 그대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고통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느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평화와 기쁨의 씨앗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인 남녀는 주위에 넘쳐나는 기쁨을 가져야 합니다. 침착한 기쁨, 전해지기 쉬운 기쁨,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다시 말해 매우 초자연적이고 전파되기 쉬워 극히 자연적인 기쁨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길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만족하십니까?”라고 질문받은 저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이 마음과 의지에서 느끼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탄 시기. 그대는 이렇게 써 보냈습니다. : “마리아와 요셉에게 마음을 모아 거룩한 기대와 함께, 저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구간에서는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한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저는 베들레헴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느끼게 될까요! 그리고 저도 주님과 함께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대의 말이 진실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성실한 결심 : 인생은 그렇지 않아도 충분한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니, 사람들을 위해 걷기 쉽고 사랑스러운 길을 만들자.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곧 모든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불편함, 피로, 더위와 추위 등을 겪어도 기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건 모두 진짜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이 준비 하셨거나 허락하신 것이니 말입니다.

신앙도 희망도 없는 사람이나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어 고뇌에 찌든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대는 하나의 목표를 찾았습니다. 곧 ‘그리스도’입니다.

목표를 발견한 덕분에 생활에 끊임없이 새로운 기쁨이 쏟아지고 그대는 변할 것입니다. 미처 몰랐던 아름다운 일들이 나날이 눈앞에 무한한 확장을 보이며, 그대를 하느님께 인도하는 이 넓은 길이 얼마나 기쁨으로 가득 찬 것인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이 지상(地上)에서 그대가 행복하려면 신앙과 순결, 그리고 주님이 제시하신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꿋꿋함이 필요합니다.

거창하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깊은 기쁨을 얻고 만족하니 하느님께 감사드리십시오.

하느님과 함께라면 매일 매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번에 “조금씩” 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날은 약간의 기막힌 내용을 알아내고, 또 다른 날에는 제가 전에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발견합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이렇게 안심시켜 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너의 행복은 나날이 더 커져갈 것으로, 그것은 네가 저 성스러운 모험 속으로, 네가 개입하게 된 저 대단한 복잡성 속으로 더욱더 깊이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내가 결코 너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기쁨이란 의탁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물레방아를 돌릴 때마다 그 기쁨은 더욱 확실해 집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이토록 변함없는 기쁨을 준다니!

그대는 모든 사람이 그 기쁨을 가질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습니까.

지금 그대가 걱정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밑바탕으로 한 미소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낙관? 네, 항상 낙관적 이어야 합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그래야 합니다. 아마 그럴 때야말로 대영광송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주님한테서 피난처를 찾았고, 주님이 나쁜 일을 보내실 리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한다고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은 주님이 빛을 온전히 소유하고 계시고, 그 빛 속에 살고 계시다는 것을 보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주님이야말로 빛인 것입니다.

평화와 기쁨을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 가져다 주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신의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십자군이 되어, 슬퍼하는 마음과 썩은 마음을 흔들어 일으켜서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대가 어떠한 부러움의 기색마저도 뿌리째로 끊는다면, 그리고 그대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한다면, 기쁨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