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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사랑의 담금질»에 봉헌 → 너그러움 항이 있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거나 경악하지 마십시오. 거짓 신중함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기 위한 부르심(성소)은 매우 갑작스럽습니다. 사도들에게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와 만나고 그분의 부르심을 따르는 일이.

사도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따르는 일이 전부 하나였습니다.

사랑을 대명제로 삼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중간한 길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열함, 치사한 타협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만일 제 안에 어떤 것이 당신을 언짢게 해드린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을 뿌리째 뽑아내 버리도록 말입니다.

그대 안에 하느님의 영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곧장 제거하십시오.

사도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유다만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혹시 그도 한때는 기적을 행하였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자발적으로 그리스도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영에 걸맞지 않은 것을 과감하고 용기 있게 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언제 결단을 내릴 작정입니까?

그대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단순히 인간적인 이유로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가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고는 어쩌면 오로지 교만이나 고집에서 또는 나중에 좀 더 안락하게 지내기 위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온갖 것을 기꺼이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대에게는 자신을 희생할 많은 동기가 있습니다. 그대가 지고 있는 감미로운 짐은 교회와 그대의 가정과 그대의 동료들과 친구들입니다. 그대는 그 짐에 관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대는 합당한 책임감을 지니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려면 지금 하는 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예술가는 자신의 손에서 탄생하는 그림이나 조각품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가 이구동성으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나는 그 이상을 하고 싶어.’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게다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기에, 우리에게서 최상의 응답을 받으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우리는 그분께 맞춰드려야 합니다.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영혼이 던진 저 질문을 나는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제 사랑, 저의 주님, 제가 싫은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린 일이 있었는지요? 주님을 아프게 해드릴 수 있는 어떤 것이 제게 있었는지요?”

이렇게 끊임없이 사랑하는 은총을 주시도록 아버지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 사도 요한을 생각하면 얼마나 흐뭇한지요. 예수 성심의 불길에 타오르도록 하고자 힘이 들더라도 사랑으로 자신의 지성을 굴복시키는 모습입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면서 그대는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주님께 간청하였습니다. 그대의 힘과 오관으로 성 십자가를 현양할 은총을 주십사 하고…. 그대는 새로운 삶을 청했습니다. 그대 사명의 진실함을 확인하는 낙인을 찍을 십자가를, 그대의 존재 전체가 의지할 십자가를 청했습니다.

우리는 지켜볼 것입니다.

그대가 진심으로 그분의 것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분께 다시 보여드리십시오. “오,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저를 참으로 당신의 것으로 삼으소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통하여 제가 불타올라 다 타도록 하소서!”

사도들이 했던 것처럼, 비록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대가 주님을 도와드린다면, 주님께서는 기꺼이 기적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빵을 많게 하시고 생각을 바꾸게 하시며 캄캄한 지성에 빛을 주시며, 한 번도 올바르게 살지 못했던 이들이 특별한 은총으로 올바르게 살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분을 도우려 한다면, 그분께서는 이 모든 것을…그 이상을 해주실 것입니다.

내 말을 잘 들으십시오. 사람들이 그대를 학대하고 불명예스럽게 할 때, 그대가 모든 이를 위한 쓰레기통 같아서 화가 난 수많은 사람이 그대에게 침을 뱉을 때, 그대는 행복합니다.

힘듭니다. 대단히 힘듭니다. 감실에 다가가서 자신을 세상의 허접쓰레기로, 가련한 벌레로 보면서 진심으로 “주님, 주님께 제 명예가 필요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명예를 바라겠습니까?” 하고 말할 때까지는 힘이 듭니다.

하느님의 자녀라 하더라도, 그때까지는, 곧 발가벗김을 당하고 굴복하기까지는, 고행과 고통에 바탕을 둔 사랑에 굴복하기까지는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