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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길»에 사도 → 대담함 항이 있음.

나는 완곡하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비겁함’을 ‘신중함’이라고 부릅니다. 그대들의 ‘신중함’은 하느님의 적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여 머리가 텅 빈 사람들이 학자인 양 행세하게 하고, 또 결코 차지해선 안될 그런 자리까지 올라가게 합니다.

“그런데 저의 생활이 이교도적, 세속적 환경과 대립할 때, 저의 자연스러움이 인위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요?” 하고 그대는 내게 묻습니다. 

나는 대답합니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대의 생활은 그들의 생활과 부딪칠 것입니다. 그대가 일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고 있는 그런 대조야말로 내가 그대에게 요구하는 바로 그 자연스러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성화의 면面은 이 세점으로 이루어집니다. 거룩한 고집, 거룩한 강요, 그리고 거룩한 뻔뻔함입니다.

거룩한 뻔뻔함은 세속적인 뻔뻔함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거룩한 뻔뻔함은 영적 어린이의 삶의 특징입니다. 어린이는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지켜본다 해도 자신의 나약함, 천성적인 나약함을 천진스럽게 드러냅니다. 

그런 뻔뻔함을 초자연적 생활로 옮겨보면 이런 이론이 가능합니다. 칭찬은 경멸이고, 존경은 멸시이고, 명예는 수치이고, 건강은 병이고, 부유는 빈곤이고, 아름다움은 추함이다…. 

자, 좋습니다. 그것이… 어떻단 말입니까.

조롱당하는 것을 웃어넘기십시오. 뭐라고 하든 전혀 개의치 마십시오. 그대 안에서 그리고 그대 환경에서 하느님을 찾고 체험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머지 않아 그대는 그리스도인의 세련미를 지니고, 역설적이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뻔뻔함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시덥잖은 대화들! 구역질나고 천박한 것들! 그런데도 그대는 직장에서, 대학에서, 수술실에서… 세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하면 그들은 비웃습니다. 그들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면 그들은 더합니다. 그대가 자리를 뜨면 그들은 계속합니다. 

해결책은 우선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엔 사내대장부다운 표정을 짓고 ‘거친 말로 하는 사도직’을 쓰는 겁니다. 그대를 만나게 되면 개인적으로 몇가지 쓸모있는 레파토리를 알려드리죠.

내가 그대를 ‘착한 아이’라고 부를 때, 그대를 수줍어하거나 겁 많은 사람으로 여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대가 남자답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도 아니라면, 그대는 사도가 되기는 커녕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고통의 시간에 여성이 남성보다 강하고 충실합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글레오파의 마리아와 살로메를 보십시오! 

고통의 동정녀 성모 마리아와 긴밀하게 연결된 용감한 여성들과 함께 한다면, 이 세상에서 영혼들을 위해 얼마나 거대한 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