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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길»에 하느님의 사랑 → 고행 항이 있음.

이 비참한 현세에서, 고통의 잔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마십시다. 나중에 하늘에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기쁨을 누리게 된다면, 10년, 20년, 50년을 고통받는다 한들 어떠랴? 

무엇보다도 ‘적절한 보상 propter retributionem’을 바라기보다는 보속의 정신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과 일치하여, 우리 주 하느님을 위로하고,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한마디로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고통을 받는다면 어떠랴?…

그대가 바라보고 있는 그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그대의 흐린 눈이 그려낸 초라한 영상일 뿐입니다…. 자신을 정화하십시오. 겸손과 참회를 통해서 그대의 눈을 밝게 하십시오. 그러면 순수한 사랑의 불빛이 모자라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완전한 시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대의 영상은 정말로 그분이 될 것입니다. 거룩하신 그분!

사람들은 보속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일들을, 지향을 바로잡아 하느님을 위해서 행한다면, 적지 않은 남녀들이 굉장한 성인이 되련만!

보속을 하는 이유 말입니까? 그대를 위한, 나를 위한, 나머지 모두를 위한, 그대 가족을 위한, 그대 조국을 위한, 교회를 위한… 속죄, 보상, 청원, 감사, 영적 진보를 위한 수단입니다. 그밖에 수천가지의 동기를 위해.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그런 작은 일들을 해나갈 때 짜증이 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웃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떠보는 아버지에게 손에 든 사탕을 줄까 말까 망설이는 순진한 아이를 본적이 없으십니까? 결국 아이는 싫으면서도 줍니다. 사랑이 승리한 것이죠.

한번 콕 찌르는 것. 그리고 한번 더. 그리고 또 한번 더. 그것들을 견디세요! 그대의 삶에서, 그대의 오솔길에서, 그대는 너무 작아서 그분께 그런 작은 십자가만을 봉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릅니까? 

게다가, 보시오. 하나의 십자가에 또다른 십자가가 겹치고, 한번의 바늘상처에 또 하나의 상처가 가해지고… 참으로 커다란 무더기! 

아이여, 결국 그대는 커다란 일 하나를 해냈군요. 거룩한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