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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사랑의 담금질»에 영적 어린이 → 영적인 어린이의 생활 항이 있음.

아들이여, 그대는 모든 사람이 그분을 사랑하게 하려는 갈망으로 불타오르지 않습니까?

착한 아들이여, 어떻게 지상의 연인들이 사랑하는 이가 준 꽃과 편지와 추억에 입 맞추는지를 보십시오.

그런데 그대는, 어떻게 늘 그대 곁에 그분이 계신다는 것을 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분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있습니까?

철부지 아이는 자기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꺼내기 위해 엄마가 바늘을 찔러 넣을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불고 법석을 떨지만 사리 분별이 있는 아이는 아마도 연약한 육신으로 인해 눈물을 글썽이겠지만 좋은 엄마를 고맙게 여기며 바라봅니다. 엄마는 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상처가 더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니까요.

예수님, 제가 사리 분별이 있는 아이처럼 되게 해주십시오.

베들레헴으로 가십시오. 아기 예수님께 가십시오. 춤추며 다가가십시오. 다정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가슴에 꼭 끌어안으십시오.

나는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위로 드러납니다. 그대는 친밀한 영혼으로 참으로 아기 예수님을 꼭 얼싸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린아이임을 아시도록 해야 합니다. 쪼그마하고 천진한 어린아이들이 계단을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하는지요.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어떻게 해서든 올라갑니다. 그런데 또 다른 계단이 있군요. 두 손과 두 무릎으로 기고 온몸으로 기를 쓰면서 다시 성공합니다. 계단이 하나 더 있네요. 다시 시작합니다. 얼마나 힘겹게 노력하는지! 이제 몇 계단만 더 가면 됩니다. 그런데 뒤뚱거리던 꼬마가 비틀하더니 저런, 떨어집니다. 곳곳에 부딪히고, 눈물범벅이 되어 저 가엾은 꼬마는 출발합니다. 다시 올라가려고 시도합니다.

예수님, 저희도 혼자일 때는 그 꼬마와 똑같습니다. 그 단순한 꼬마의 크고 착한 벗처럼 당신의 사랑 넘치는 팔로 저희를 안아 올려 주십시오. 저희가 꼭대기에 도달할 때까지 저희를 떠나지 마십시오. 그러면, 오, 그러면! 저희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에 어떻게 응답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당돌하게 감미로우신 주님이신 당신께 말씀드릴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 이후로 저만큼 당신을 사랑한 영혼은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정말로 미친 이는 더러 있었습니다.

어린이같이 작은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나는 그대에게 충고했습니다. 그 일이 판에 박힌 행위에서 나오지 않은 한 결실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영적인 유년기의 길을 따르고 있는 한 영혼이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나무로 만든 성모님 상을 안고서는 감동한다고 가정합시다.

우리의 지성은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쓸데없는 짓이라고 거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은총에 감화된 겸손한 영혼이라면 참으로 사랑에서 이처럼 행동하곤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어린아이인 모든 사람이 지니는 강한 의지는 지성이 굴복하기를 요구하며 또 굴복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만일 저 어린아이 같은 영혼이 밤마다 계속해서 성모님 상을 끌어안는다면 하느님 보시기에 풍부한 결실을 거둘 어린아이 같은 작은 사랑의 행위가 날마다 거듭되는 것입니다.

그대가 참으로 어린아이가 되어 어린아이의 길을 따른다면, 하느님에게 이끌려 그 길을 따른다면, 그대는 무적이 될 것입니다.

그대 자신이 작고 가진 것이 없고 나약하다는 것을 아는 게 급선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상 어머니의 무릎에 뛰어들어 화살기도를 바치고 애정 어린 시선을 간직하며 마리아 신심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대가 지녀야 하는 자녀다운 정신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마리아께서는 그대를 지켜보아 주실 것입니다.

파라클리토 성령께 말씀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마십시오. 그분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대여! 기도할 때, 그대에게 하느님의 자녀임을 깊이 깨닫게 해줄 수 있는 저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십시오. 그대는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사랑으로 가득 차지 않았던가요. 전에 그대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갔음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을 그대는 벗으로 형제로 연인으로 경배하지 않습니까.

이 충고를 받아들인 뒤에 그대는 이 순간까지 성령께서 그대 영혼 안에 거처하시면서 그대를 성화하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성령의 현존에 관한 진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대에게는 이 충고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그대는 그대 안에 계시는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대는 그분께 말씀을 건네고 그분의 친구가 되고 그분을 신뢰하고 싶어 합니다. 광을 내고 솎아내고 다시 불을 밝히는 그분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대는 생각했지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나는 강조합니다.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분은 온갖 것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그대는 원하십시오!

그분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거룩하신 손님이시며 스승이시며 빛이시며 인도자이시며 사랑이시여, 제가 당신을 참으로 제 안에 기쁘게 모셔 들이고 당신께서 제게 가르치시는 교훈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제가 당신을 위한 열성으로 불타오르게 하시고 당신을 따르고 사랑하게 하소서.”

하느님께서는 그대에게 유치하고 ‘사소한 것들’로 이루어진 예전의 “내적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음을 그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그 영웅적인 ‘사소한 것들’에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동안 항구하게 인내해야 합니다. 그대는 그대의 감정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감정은 선을 깨닫는 데 너무나 더디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이행하려는 의지가 차갑게 식었을지 모르지만, 사랑으로 그 사소한 의무들을 이행하도록 하십시오.

자신을 내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많은 영혼이 드러나지 않은 내적 삶에서 자신을 내어놓습니다. 주님만이 빛나시도록 하려고 말입니다.

나는 그대와 내가 성가정 축일에 하느님께 아주 가까이 가기를 원했던 그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당시에 성가정 축일은 주님 공현 팔일 축제 중에 지냈습니다.

“제게는 작은 십자가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그 가운데 하나가 저를 너무 아프게 해서 저는 울었습니다. 오늘 그 십자가로 저는 아버지 성 요셉과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들의 이 자식이 성탄 선물 없이 지내도록 하지 않으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선물은 제가 예수님께 배은망덕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빛이었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길 원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을 저의 돼먹지 못한 처신으로 거스르려 했던 엄청난 잘못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