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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밭고랑»에 내적 생활 → 거룩함과 미덕 항이 있음.

옆에서 조르면 조를수록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니까. (역주: 서양속담) 그러니까 좀 더 가까이 다가서세요. 성인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내적생활을 의상에, 복음서에서 말하는 결혼 예복에 견주기를 좋아합니다. 함께 천에다 힘을 주는, 실같은 온갖 경건한 습관과 행동으로 천은 짜입니다. 그러므로 찢어진 옷은 비록 나머지 재료가 좋은 상태로 있다 하더라도 거절당하는 것과 꼭같이, 만약에 그대가 기도하고 일하지만 회개하지 않는다면(또는 다른 길로 돈다면) 그대의 내적생활은 (말하자면)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유일하게 가능한 길은 진지하게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임을 언제 인식할 것입니까?

화내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진지하게 받들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대의 그 경박함은 만약에 그대가 그것과 싸우지 않는다면, 슬프고 모독적인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대는 가끔 당신 성격의 나쁜 쪽이 나오게 내버려 두고, 그것이 한가지 경우 이상으로 터무니없이 거칠게 그 자체를 나타냅니다. 그밖의 경우에는 그대의 마음과 그대의 머리를 지극히 거룩한 성삼위를 위한 훌륭한 거처가 되도록 준비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언제나 당신은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버립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렇게 하면 그대는 결코 내적생활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경탄하고 주로 따라다니지만 그 인성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겉모습은 진실로 믿음이 깊어 보이지만 초자연의 덕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연덕을 몸에 익히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에든지 다 듣는 약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거룩함(聖性)입니다. 그러니 성인들은 평화, 강의, 기쁨, 확신 등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머지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감추어진 내적생활의 경이로움.

그대는 그들 앞에다 엄청나게 경이로운 새 세계를 놓아 주고 있는 중입니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들을 발견했는지요! 그런데 여전히 가끔 차라리 순진해서 그대가 이미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이미 발견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유일하고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보물에 도달해서 그것에 손댈 수 있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는 만약에 그대가 사랑과 민감함으로 호응한다면, 늘 “새 일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단지 시작에 불과함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자신을 하느님과, 무한하시고 다함이 없으신 우리들의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데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일들”을 이해하기에 이르는 것은 공부라기보다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대는 一애정을 가지고一 일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질병을 받아들여야 하고, 맑은 정신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