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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내적 생활 → 예수그리스도를 다루다 항이 있음.

이것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대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당신 나날의 생활 중의 모든 훌륭한 행위에서의 아버지이심과, 친구이심과, 충고자이심과 원조자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게 되는 일은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겨우 극히 한정된 지식 밖에 얻을 수 없는데, 당신은 매일 끈질기게 수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왜 악착같이 스승이신 예수님한테 가지 않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맛과 내실을 가진 내적생활을 가르치고 싶은데 말이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나 지상 최고의 보상도 늘 그대를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값어치도 없지 않겠습니까.

매일 잠시 동안씩 묵상하여 하느님과 우정으로 결합하는 것은 그들의 생활을 좋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따라 생활하는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울립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작별인사를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언제나 서로 같이 있습니다.

당신과 그리고 저는 그와 같이 주님 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가요?

그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외모로 서로 기쁘게해 주기 위해 어떻게 옷을 입는가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까? 네, 그것이 그대가 그대의 영혼을 장비하고 장식하는 방법입니다.

은총은 자연같이 정상적으로는 점진적으로 작용합니다. 적절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은총에 앞서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달려있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허락하실 때 우리는 그 길을 준비하고 협조해야 합니다.

영혼들은 대단히 높게 목표를 잡도록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상을 향해서 강요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줄어들거나 약해지게 해서는 안되는 가장 높은 목표로 인도하십시오. 그러나 거룩함(聖性)은 원래 자기 자신의 손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은총은 정상적으로는 그 시간을 취하고, 폭력으로 행동하는 데로 기울지 않습니다.

그대의 거룩한 성급함을 격려하되 그대의 인내력을 잃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것은 정의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관대함의 문제입니까, 라고 그대는 물었습니다.

사랑의 문제입니다

“저의 일들이 가장 나쁜 순간에 저의 머리속을 설칩니다.”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대에게 가끔씩 내적 침묵을 이루도록 해 보고, 그리고 그대의 외적이고 내적인 감각들을 지켜 보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이미 날도 저물어 저녁이 다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몹시다···” 글레오파와 그의 동반자의 기도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만약에 당신과 제가 우리 곁을 지나가고 계시는 예수님을 “붙들어 두지” 못 한다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주님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제가 그대에게 신약성서를 읽고 하나하나의 장면으로 들어가서, 등장인물 가운데 또 한 사람같이 그 안에서 역할을 맡으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이 방법으로 매일 소비하는 몇 분씩은 그대가 복음에 “살을 붙이”고, 그대의 생활에 그것을 반영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반영하도록 도와 줄 수 있게 해 줍니다.

전에는 그대는 무척 많이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지금, 그대의 전체 생활은 진지하고 남을 감화시키는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매료합니다.

그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주님을 더 잘 알게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