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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밭고랑»에 내적 생활 → 특성 항이 있음.

그대는 젊어졌습니다. 하느님과의 우정 덕분에 짧은 시간에 젊은이의 순박하고 행복할 때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애 같은 짓을 하지 않고, 영적 어린이로서 확신과 기쁨까지 다시 살아났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동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지 오래돼 원숙기에 접어 들면서 사라지지 않는 젊음과 기쁨이 더해진 것입니다.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마음이 젊고 기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적생활의 실체는 영혼들을 끌어당기고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젊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시는 하느님께 매일 감사를 드리십시오.

아마도 어제의 그대는 꿈에 배신당하고 야망을 꺾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대의 생활에 파고든 지금-주님, 감사합니다-미소짓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발길 가는 곳마다 미소와 사랑과 행복을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때는 그대가 비관적이고, 주저하고, 무감동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완벽하게 변모했습니다: 그대는 용기있고, 낙관적이고, 자신있음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대는 마침내 하느님께만 의지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적생활을 의상에, 복음서에서 말하는 결혼 예복에 견주기를 좋아합니다. 함께 천에다 힘을 주는, 실같은 온갖 경건한 습관과 행동으로 천은 짜입니다. 그러므로 찢어진 옷은 비록 나머지 재료가 좋은 상태로 있다 하더라도 거절당하는 것과 꼭같이, 만약에 그대가 기도하고 일하지만 회개하지 않는다면(또는 다른 길로 돈다면) 그대의 내적생활은 (말하자면)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그대는 가끔 당신 성격의 나쁜 쪽이 나오게 내버려 두고, 그것이 한가지 경우 이상으로 터무니없이 거칠게 그 자체를 나타냅니다. 그밖의 경우에는 그대의 마음과 그대의 머리를 지극히 거룩한 성삼위를 위한 훌륭한 거처가 되도록 준비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언제나 당신은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버립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렇게 하면 그대는 결코 내적생활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는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일들을 발견했는지요! 그런데 여전히 가끔 차라리 순진해서 그대가 이미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것을 이미 발견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유일하고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보물에 도달해서 그것에 손댈 수 있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는 만약에 그대가 사랑과 민감함으로 호응한다면, 늘 “새 일들”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단지 시작에 불과함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자신을 하느님과, 무한하시고 다함이 없으신 우리들의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데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대단히 가까이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대는 모든 일을 주님을 위해서 해야한다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즉 주로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알기 위해 크게 눈을 뜨고 인생을 달려나가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턴 맑은 눈으로 달리십시오. 진정으로 당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주님과 함께 보기 위함입니다.

내적 생활과 사도직으로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정적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의지의 너그럽고 결연한 마음가짐입니다.

성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