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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밭고랑»에 내적 생활 → 기도와 하느님의 현존 항이 있음.

여기에 그대의 나날의 성찰을 위한 요점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아버지 하느님과 이야기함 없이 한시간을 지나가게 내버려 두었는가? 저는 주님께 자녀다운 사랑을 가지고 말씀드렸는가? 그대는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우리를 창조하기만 하고 나머지는 방치해 두는 그림자 같은 존재도 아니며,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주인 같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비록 오감으로 감지할 수 없지만 손으로 만져보고 목격할 수 있는 그 어떤 현실보다 더 확실합니다.하느님은 지금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현존하고 계십니다. 우리를보고,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고, 우리를 인솔하며, 우리의 가장 작은 행실과 마음 속 마음을 보고계십니다.

그렇게 저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삽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한마디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 감정을 억제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느님에게 사랑을 표시하지 않고 보답을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죽은 신앙’으로 계속 살아 있어도 되겠습니까?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그대는 분명히 “구제불능”한 많은 일들을 구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 저것 눈길을 주는 일 따위로는 하느님의 현존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쓸데없는 일로 너무 취한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묵상’이라는 말을 듣고 당신은 놀랄지도 모릅니다. 낡은 검은 표지의 책과 한숨이나 단조로운 반복 같은 기도를 떠올리니까.그러나 그런 건 묵상이 아닙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하느님이 아버지이시며 그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주신 것과 장차 받게 될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대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당신 나날의 생활 중의 모든 훌륭한 행위에서의 아버지이심과, 친구이심과, 충고자이심과 원조자이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알게 되는 일은 사랑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겨우 극히 한정된 지식 밖에 얻을 수 없는데, 당신은 매일 끈질기게 수업에 들어갑니다. 그런데도 왜 악착같이 스승이신 예수님한테 가지 않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맛과 내실을 가진 내적생활을 가르치고 싶은데 말이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나 지상 최고의 보상도 늘 그대를 기다려주시는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값어치도 없지 않겠습니까.

매일 잠시 동안씩 묵상하여 하느님과 우정으로 결합하는 것은 그들의 생활을 좋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기 신념을 따라 생활하는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