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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밭고랑»에 사도직 → 친교와 신뢰 사도직 항이 있음.

제가 말하는 ‘우정의 사도직’이란, ‘개인적이고’, 희생을 아끼지 않는, 성실한, 즉 일대일의, 진심어린 마음의 우정입니다.

우정과 신뢰(터놓고 하는 이야기)의 사도직의 첫걸음은 이해하는 것, 섬기는 것, 그리고 교리면에서 성스러운 비타협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그들만의 작은 세계 안에다 자신들을 가둬두지 못합니다. 그러한 제한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들은 반드시 모든 영혼에 도달하기 위해 부채같이 펼쳐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친구들의 써클을 창출해야 하고 一 그리고 넓혀야 하고 —그 친구들에게 자기 직업상의 신망을 가지고, 자기 행위를 가지고, 자기 우정을 가지고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그 직업상의 신망과 그 행위와 그 우정의 방편을 빌어 주님의 영향력을 행사하시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자신만의 환경에 틀어박힐 수 없습니다. 그런 지각 갇혀있다니 슬픈 일이 아닙니까? 스스로를 부채처럼 펴고 모든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친구들의 사도적 모임(써클)을 창출해야 하고 一 그리고 넓혀야 하고 — 자신의 업무에서 좋은 평판이나 행동이나 우정으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업무상의 좋은 평판이나 행실과 우정을 통해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저에게 그대의 사도직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써보내 왔을 때 저는 완벽하게 이해하였습니다. “저는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세 시간 동안 기도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충격이어서 도서관 책상 맞은쪽에 있는 다른 하나의 자리가 내려옵니다 —주님께서 이 근처에 오셨을 때 그대는 벌써 주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기도와 일은 쉽게 병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대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를 저는 기억합니다.

성서의 말씀 “바보들의 수효는 끝이 없으며”, 그들은 매일 늘어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다양한 지위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직무 그 자체에 부수되는 겉치레의 평판이나, 끝내는 겉치레의 ‘덕(徳)’에 숨어 있지만, 얼마나 많은 잘못이 저질러져 양지에 부족한 행동이 행해지고 있는 것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참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이 삶의 초자연적 의의를 잃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적인 동기에서 그런 상태를 참는 것이라면 사실 참지 않을 수 없다지만 당신의 내적 상태는 참으로 저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책임감 넘치는 일처리와 끝까지 일을 끝내는-곧 그 일을 성화하는 것-태도로 그런 사람들이 길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당신도 그들과 똑같은 어리석거나 공범자가 되고 맙니다.

그대에게 우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무리의 목자로서의 자각을 갖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이전에 저버렸던 사람들을 지금 다시 모아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였습니다.

단순히 수동적인 태도로만 유지해서는 안됩니다. 당신 친구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즉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합니다. 우선 당신의 행실의 모범을 따르고, 이어서 당신의 권유와 친밀감을 더하는 영향력으로 말입니다.

다행히도 당신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진정한 선생님,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책략을 부려 그들의 지식을 ‘훔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힘든 고생과 고통 끝에 얻었지만, 당신은 더 편한 방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대가 저 사람, 이 사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해 줄 차례입니다.

똑바로 묵상하고 결과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그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당신이 그들을 ‘정말’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생각을 바꿀 겁니다. 당신 하기 나름입니다.

그대의 우정과 가르침이 있다면-다시 말하면- 애덕과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기 위해 비가톨릭 신자들을 동원해 그들의 진지한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교리를 일러 주는 사도직은 통상, 이를테면 모세혈관같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각 신자로부터 그 바로 곁의 친구에게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영혼마다 다 중요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모든 영혼들을 돌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