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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밭고랑»에 사도직 → 권리와 의무 항이 있음.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귀로 들으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보지마는 깨닫지 못한다.” 이것들은 성령의 분명한 말씀들이다.

어떤 사람들이 사도직을 “보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기는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그것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왜 근심합니까?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대의 길을 따라 참아 가십시오. 만약에 그들이 나서기를 원치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평화와 기쁨을 이 세상의 여러 가지 다른 환경에 가져다 주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신의와 기쁨을 가져다주는 십자군이 되어, 슬퍼하는 마음과 썩은 마음을 흔들어 일으켜서 하느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말을 잘 듣고 메아리처럼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하느님과 사귀는 것은 하느님과 가장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배려, 즉 사도직이란 사치스러운 것도 소수자의 일도 아니라는 것을.

이걸 알게 된 지금, 기뻐하십시오. 당신의 생활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에 따라 생활 방식을 갖추십시오

영혼에 대한 열성이 있을 때에는 좋은 사람들을 언제나 찾을 수 있고, 기름진 땅을 언제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변명은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대의 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알건 모르건 간에 그리스도를 찾고 있으면서 주님을 찾아내지 못한 영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게 일러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주님에 관해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대가 강렬하고 끊임없는 사도직을 실천하고 있지 않다면 그대의 내적생활에 마음을 쓴다고 저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주님께 가까이 있다고 저에게 확언한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시민이 정규군의 부분을 이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시에는 모두가 참여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마태오

10:34)

“사람들이 몹시 분주하게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 그리스도의 이름만은 설교되고 있지만,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이 드문 현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로서 예수님과 일치하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할 그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가서 여러 나라 백성 모두에게, 모든 시대에 걸쳐 가르침을 전파하라고 주님께서 분부하셨는데 말입니다.

다행히도 당신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진정한 선생님,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책략을 부려 그들의 지식을 ‘훔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힘든 고생과 고통 끝에 얻었지만, 당신은 더 편한 방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대가 저 사람, 이 사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일을 해 줄 차례입니다.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은 비몽사몽간에 깨어나 겁쟁이에게 힘을 주고 길을 잃은 사람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전열에 편입하게 하여 그토록 많은 힘이 낭비되는 것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청할 힘조차 없는 일부 남녀를 저는 압니다”라고 그대는 저에게 슬픔과 실망으로 말해 줍니다. 그들을 궁지에 내버려두지 마십시오. 그대가 당신 자신과 그들을 구하려는 소망은 그들의 회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또 만약에 그대가 그 일에 관해서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대는 누군가가 그대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입니다.

당신은 ‘스님’처럼 사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아니면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위험이 많이 있습니다. 즉, 잘 정돈된 집에서 살며, 탈 없이, 행복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나자렛의 가족을 희화화하는 것입니다. 행복과 질서를 지니신 예수님은 그 보물을 모든 시대의 남녀에게 전해주기 위해 행차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