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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밭고랑»에 사도직 → 필요한 덕목 항이 있음.

어떤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사도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자기변명의 필요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인간적인 덕행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굉장히 일그러졌고 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협'을 입에 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적 앞에서 겁을 먹는 사람들. 그대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대는 그 사업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협조하지 않기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거나 협력하고 있다고 생각되거나 하는 것조차 최대한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는 있는 그대로의 나 이상으로 좋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이나 사람들로부터 좀더 일관된 삶을 살라는 요구를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본심 아닙니까.

저는 사도답지 않습니다… 겁이 많습니다.

그대가 겁에 질려 있는 것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습니까?

사도직이라고 하는 사업을 펼침에 있어서 맞닥뜨리는 ‘노(No)’는, 최종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노력’을 거듭하십시오.

그대는 너무 ‘조심스럽고’, 혹은 너무 ‘초자연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대는 유난히 똑똑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내거나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마 그대만큼 ‘영리’ 하지않거나, 혹은 그대 이상으로 ‘관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께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렇지만’이라며 시끄럽게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매우 신중하고 용의주도한 방법이 있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소심해지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십시오. 하느님을 위해 일한다면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은 없으며, 일을 그만둘 만큼 실망하는 일도 없습니다. 설령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패는 없습니다.

그대는 신앙을 가졌지만 충분히 활동하지 않습니다. 신앙심이 있기는 하지만 그대는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침착함. 담대함.

이런 미덕들로 겁쟁이들, 배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하십시오.

쉬는 날 없이 싸우겠다고 그대는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대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봐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장애물도 없는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그대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야하기 때문입니다!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성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그 초자연적 사업에 뛰어들어 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지 못하거나 일을 잘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대는 말합니다. 만약에 그대가 하느님에 관해서 더 생각한다면 그러한 핑계들은 없어질 텐데…

몇몇 선량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 하느님과 교회의 적이 그 두려움 의지해서 지내고 있다고 때때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면 저는 너무 부끄러워집니다.

기도할 때는 담대해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은 비관적인 그대를 낙관적인 사람으로, 겁쟁이를 담대한 사람으로,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에서 신앙인 즉, 사도로 바꿔놓으실 것입니다.

자연스러움, 성실, 기쁨. 이들은 곧 사도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들입니다.

누구에게나 항상 예의바르게 대하십시오. 당신은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하지만 스스로 당신의 반대자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실수에서 벗어나게 해주려면 각별히 예의를 갖춰야 합니다.

그대가 분개해서 묻습니다. 저 사도직이 수행되어야할 주위 환경과 으례 하는 일들은 추악하고 더럽고 —그리고 뒤엉켜야 합니까? 그리고 그대는 덧붙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잘 해내는 데 그다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텐데!”

저는 그대의 분개가 퍽 이유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마다 어떻게 말씀하셨고 그들 모두: 가난한 사람과 부자, 현명한 자와 무식한자, 명랑한자와 슬픈 자, 젊은이와 늙은이의 마음을 어떻게 끌어 들이셨나를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시고 자연스러우시고 ―초자연적이시고— 하신지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상냥한 대접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사도직은 생기 없는 폐쇄적 모임 속에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대는 지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계속할 수 있지만 무기력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나를 찾아 오지 않았다”라는 것이 그대의 변명입니다.

내 생각을 말하겠습니다: 만약에 그대가 태도를 바꿔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코 능률있는 사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달으십시오: 그대의 사도직은 선, 광명 열성, 관용, 희생정신, 일에서의 일관성, 깊은 연구, 완전한 자기 포기, 최진보에 뒤지지 않는 것, 성교회에 대한 완전한 순종 및 완벽한 애덕을 확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