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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밭고랑»에 사도직 → 사도직의 일치 항이 있음.

성령 강림의 훌륭한 점은 그것이 모든 길을 성화(聖化) 했다는 것입니다. 즉,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독점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만을 높이 평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이란 온갖 종류의 말과 방법과 형태로 신을 만나는 것이지 강요된 획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게릴라였어요. 산 속을 돌아다니며 마음이 내키고 있을 때 총을 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적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직된 규율있는 군대 쪽이 전쟁에 이기기 쉽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고한 게릴라 분위기에서는 마을 전체를 함락시키거나 세계를 점령할 수 없습니다. 아주 고리타분한 총을 버리고, 지금은 최신 무장을 하고 있어요. 그 대신 산속에 누워 혼자 전쟁에서 이기는 꿈을 꿀 수 없게 됐죠.”

우리의 어머니, 성스러운 교회는 그 얼마나 훌륭한 규율과 일치하고 있습니까!

그대가 분개해서 묻습니다. 저 사도직이 수행되어야할 주위 환경과 으례 하는 일들은 추악하고 더럽고 —그리고 뒤엉켜야 합니까? 그리고 그대는 덧붙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 일을 잘 해내는 데 그다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텐데!”

저는 그대의 분개가 퍽 이유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마다 어떻게 말씀하셨고 그들 모두: 가난한 사람과 부자, 현명한 자와 무식한자, 명랑한자와 슬픈 자, 젊은이와 늙은이의 마음을 어떻게 끌어 들이셨나를 저는 깊이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모습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시고 자연스러우시고 ―초자연적이시고— 하신지요.

성인들의 통공을 통해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과 아주 가깝게 결합되어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그 거룩한 결합을 두려움없이 지키십시오.

만약에 그대가 혼자라면, 그대의 고귀한 포부는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혼자 있는 양은 거의 언제나 길잃은 양입니다.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공통의 사명과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사람들은 결속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행복이라는 ‘유일한 목적’이 별로 값어치가 없어보입니다.

애덕을 실천한다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지, 사람들이 하느님을 향해 가는 길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지, 남이 그대와 똑같이 생각하고 그대에게 동참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병행하여 나아가는 길로서, 각각 자기 고유의 길을 걸어 신에 이르는 것이지요. 따라서 길을 비교해서 누가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는지 궁금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 것, 중요한 것은 모두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니까.

결속하면 자기를 몰아낼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폭군의 전술은 그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수 즉 악마와 그 추종자들이 수많은 사도직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오래된 함정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인데도 그들을 경쟁상대로 여기지만,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스스로의 행동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 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들에 관해서 우호적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특히 그대가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관해서 말할 때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침묵을 지키십시오. 날카롭거나 또는 짜증나게 하는 비판은 뒷공론이나 비방을 초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